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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흔들려도 감 오면 거침없이 찰칵… 생생하게 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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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흔들려도 감 오면 거침없이 찰칵… 생생하게 담아야죠”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07-13 03:00수정 2019-07-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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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서 유기견까지… 패션 사진작가 김태은의 삶과 샷
김태은 패션 포토그래퍼
화가 지망생에서 성악가로, 포토그래퍼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로…. 패션 사진작가 김태은(46)이 살아온 인생은 한마디로 단정 짓기 어렵다. 언제나 고독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는 늘 심장의 두근거림에 충실한 삶을 찾아왔다.

지난주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한 전원주택. 벨을 누르자 흰 털이 부슬부슬한 개와 알록달록한 점박이 무늬 개, 갈색의 다리 짧은 개 등이 한꺼번에 문 앞에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반려견 7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김 작가의 집을 방문한 첫 느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5분도 안 돼 곧 녀석들의 사랑스러운 애교에 푹 빠져버렸다.

“10년 전쯤이었어요. 촬영 팀에서 소품용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 샀어요. 그런데 촬영 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강아지를 안 챙기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가 데려왔지요. 한 손으로 안고 왔던 쪼그만 강아지가 글쎄 50kg이 넘는 대형 견으로 커 버렸지요. 바로 ‘구름이’라는 친구예요.”


그는 요즘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패션화보처럼 멋지게 차려 입은 반려견 사진을 찍는다. 클래식한 인물 초상화처럼 촬영한 견공들은 사실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울산의 한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 200마리를 구조한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직접 입양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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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제게 처음 왔을 때는 볼품이 없었어요. 다들 공포에 질려 있었고, 눈빛이 불안했어요. 최대한 예쁘고, 아름답게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습니다. 인쇄한 사진 위에 제가 직접 수채화로 꽃을 채색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패션 포토그래퍼 김태은 씨는 미술과 성악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국내 톱스타 배우들과 함께 패션화보 작업을 해왔다.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유기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을 해 온 김 작가는 지난해 유기견을 꽃으로 장식하고 인물 초상화처럼 촬영한 사진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김태은 씨 제공
그는 지난해 반려견 패션화보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아름다운 유화처럼 표현된 유기견의 사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미술과 음악에서 패션사진으로

김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 화실에 다녔다. 그러나 그림에선 특별한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선화예중 시험도 떨어졌다. 이후 로마에 살던 고모의 권유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교 1학년 때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가 몇 년 뒤 소프라노 조수미가 다녔던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했다. 당시 신입생 2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한 현지 학생의 “한국에는 음악이 없니? 왜 다 여기 와서 음악을 공부하려 하니?”라는 물음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날 밤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꿈을 꿨다. 전공교수로부터는 “너는 성량도 좋고 고음도 잘 나는데, 감정 표현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봐야 절절한 노래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질책이었다. 결국 그는 성악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작가는 20대 중반에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친구 덕에 사진을 접하게 됐다. 그는 “암실에서 처음 사진을 현상했을 때 기분이 짜릿했다. 미술과 음악을 할 때는 쑥스러워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했는데, 카메라를 만나 감정의 ‘퍼텐셜’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고 말했다. 1년 뒤 그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났다. 27세 늦은 나이었지만, 순수 예술사진을 배우는 재미에 심장이 요동쳤다.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망해 유학을 접고 귀국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 너무나도 슬프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 등 뒤의 불꽃과 같은 인스피레이션

김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촬영한 배우 장동건의 패션화보. 김태은 씨 제공
위기의 순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한 뒤 유럽에 화보 촬영을 온 배우 장동건이었다. 그는 10박 11일간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를 오가며 촬영뿐 아니라 촬영 스태프 식사 주문과 교통편 예약, 통역까지 총괄하는 일을 맡았다. 첫날부터 촬영 팀이 가방을 도둑맞고, 여권을 잃어버리는 등 사고의 연속이었다. 따로 사진 촬영할 시간이 없어 24시간 장동건에게 붙어 틈틈이 찍었다. 잘 때도 찍고, 앉아서 쉴 때도 찍고, 거울 보면서 세수할 때도 찍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촬영한 패션화보였다.

3개월 뒤 귀국했을 때 김 작가는 스타가 돼 있었다. 장동건의 매력을 거칠지만 자연스럽게 표현한 화보가 패션잡지에 무려 30페이지에 걸쳐 실렸다. 남자 배우의 화보가 패션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실린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엔 배우 원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동건 화보집을 보고 배우 원빈이 직접 “이 작가와 찍고 싶다”고 연락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진행된 첫 촬영 날. 그는 원빈에게 “지금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원빈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2박 3일간의 원래 일정을 취소한 뒤, 기차표를 끊고 자동차를 렌트해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났다. 기차 칸에서 사진을 찍고, 고속도로의 허름한 호텔에서 잠을 자며 촬영했다. 군대 가기 1년 전 불안한 마음의 배우, 한국에 돌아와서 1년도 안 돼 혼란스러운 포토그래퍼. 두 젊은이의 흔들리는 감정이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사정없이 부딪쳤다. 그는 목에 하나, 손목에 하나, 어시스트가 멘 중형 카메라까지 3대의 카메라를 저글링하면서 미친 듯이 찍었다. 일본에서 출시돼 대히트한 이 화보집에 대해 그는 “내 인생의 최고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패션사진 작가들은 뭔가 완벽히 세팅이 돼야만 셔터를 누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점이 맞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저는 초점이 맞지 않아도 셔터를 누르고 싶을 때 어떤 공포도 없이 막 찍습니다. 내 뒤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충실할 때, 인스피레이션(영감)이 숨쉬는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장동건과 원빈의 작업을 시작으로 이영애와 공효진, 이효리, 배두나 등 유명 배우와 화보작업을 이어나갔다. 또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캘린더 특집 편에도 출연해 1등을 차지했다.

그는 “사진은 기계적인 테크닉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그림도 그렸고, 성악도 공부했고, 홀로 고독하게 청춘을 보냈던 다양한 경험이 내 패션사진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패션 사진작가#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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