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빠르게, 독특하게, 트렌디하게… 나, 핫한 남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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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패션시장 큰손 떠오른 ‘그루답터’

프랑스 파리의 프랭탕백화점이 개점 이후 최초로 선보인 ‘특별한 남성 테마전’.
프랑스 파리의 프랭탕백화점이 개점 이후 최초로 선보인 ‘특별한 남성 테마전’.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달 열린 패션위크 기간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바스티유 광장 인근에 쇼룸을 열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형주 롯데백화점 과장(수석바이어)과 이재훈 대리(바이어)는 아디다스의 ‘Y-3’가 내년 봄여름(SS) 시즌을 맞아 선보인 제품을 분주히 고르고 있었다. Y-3는 아디다스와 일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가 힘을 합쳐 만든 컬래버레이션 브랜드. 아디다스 특유의 삼선 디자인에 디자이너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제품이 특징이다

이 과장은 이곳 쇼룸에서만 신발, 옷, 모자 등 1200개를 구매했다. 판매가로 치면 3억5000만 원어치. 그는 해마다 파리,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의 쇼룸을 돌며 전 세계적으로 ‘핫’한 브랜드 제품들을 직접 구매하고 있다. 구매한 제품은 롯데백화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남성 수입의류 편집숍 ‘엘리든맨’에서 판매한다.

롯데백화점이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엘리든맨은 주요 고객인 20, 30대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독특하면서 트렌디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주요 브랜드로는 Y-3를 비롯해 일본의 언더커버, 미국의 엔지니어드 가먼츠, 프랑스의 케시케시 등 50여 개 해외 제품이다. 현재 본점, 잠실점 에비뉴엘, 부산본점, 평촌점, 인천터미널 등에서 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엘리든맨의 매출은 해마다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1∼6월) 매출은 전년보다 31% 늘었다.

최근 몇 년간 편집숍들이 많아지면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은 바이어에 대해 자체 등급을 매겨 판매 제품의 종류와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 이 과장은 “일부 브랜드는 자신의 상품을 매장에 어떻게 진열했는지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며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20, 30대 남성들이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제품이나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핫’한 브랜드 제품에 열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꾸미는 것을 넘어 남들보다 빠르고 독특하게 꾸미려는 ‘그루답터’가 최근 패션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루답터는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과 ‘얼리어답터’(새 제품을 남들보다 먼저 경험하려는 고객)의 합성어다. 줄을 서서라도 브랜드 한정판을 구매하려는 젊은 남성의 소비욕은 온라인상에서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셀링’ 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 인근에 마련된 아디다스 쇼룸에서 이형주 롯데백화점 수석바이어(오른쪽)와 이재훈 바이어(가운데)가 아디다스의 Y-3 제품을 고르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지난달 20일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 인근에 마련된 아디다스 쇼룸에서 이형주 롯데백화점 수석바이어(오른쪽)와 이재훈 바이어(가운데)가 아디다스의 Y-3 제품을 고르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에서도 비슷한 바람이 불고 있다. 프랭탕백화점에서 만난 나탈리 루카스 패션 담당 디렉터는 “남성 밀레니얼 고객은 정형화되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구별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진다”며 “얼마나 새로운 브랜드 및 제품을 찾아내는지가 백화점이 미래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1800년대 지어진 이 백화점은 최근 개점 후 최초로 남성 고객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남성 테마전’을 열었다. 30대 중반 남성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수제 장갑, 안경, 여행가방 등 독특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국내 백화점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남성 수입 의류 브랜드가 잘 팔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톰브라운’ ‘산드로’ 등 남성 수입 캐주얼 상품의 매출 증가율은 2016년 3.8%에서 2017년 5.1%, 2018년 7.9%로 꾸준히 늘고 있다. 기존 ‘재킷-셔츠-바지’로 대변돼온 슈트 기반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점퍼-티셔츠-조거팬츠’처럼 실용적이면서 디자이너 감성을 가진 독특한 스타일로 변화되고 있다. 색감은 무채색에서 ‘옐로(노랑)’ ‘오렌지(주황)’ 등 과감해지고 있다.

다른 국내 백화점들도 희소성 높은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그루답터를 백화점 매장에 끌어들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5월 신촌점 나이키 매장에서 ‘조던 4 브레드’ 운동화 40켤레를 팔았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선착순 150명에게만 구매 추첨권을 줘서 최종 40명에게 구입 기회를 줬는데, 200명이 넘는 남성 고객이 몰렸다. 신세계백화점도 컬래버레이션 상품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 분더샵은 지난해 5월 버거 브랜드 ‘쉐이크쉑’과 티셔츠 모자 가방 등을 선보였으며, 올해 2월엔 스페인 신발 브랜드 ‘아렐스’와 손잡고 한정 상품을 내놓았다.

파리=염희진 salthj@donga.com / 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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