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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대부' 신중현이 돌아온다…세 아들과 14년만에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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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대부' 신중현이 돌아온다…세 아들과 14년만에 앨범

임희윤 기자 입력 2019-07-08 15:39수정 2019-07-0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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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2일 만난 신중현 씨는 전기기타부터 들어보였다. 미국 펜더사(社)가 그에게 바친, 세계에 한 대뿐인 ‘신중현 기타’다. “60여 년간 수많은 기타를 쳐봤지만 이걸 따라갈 수는 없어요. 심신에서 나오는 나의 소리를 거짓말 않고 그대로 내주니까요.” 새 앨범 표지(작은 사진)의 파격적 디자인도 그가 직접했다.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81)이 돌아온다. 무려 14년 만이다. 15일 내는 새 앨범의 녹음에 아들 삼형제, 신대철 신윤철 신석철이 참여했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빛낸 4부자가 함께 녹음한 사상 첫 앨범이다. 제목은 ‘헌정 기타 기념 앨범’. 앞서 2009년 세계적 기타 제조사 ‘펜더’는 신중현에게 특제 기타를 헌정했다.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잉베이 말름스틴 등에 이어 아시아인에게는 최초 헌정이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자택에서 2일 만난 신중현은 “그간 음반을 제작할 능력도 없다고 생각해 (복귀를) 미뤘다. 하지만 내 연주가 헌정을 받을 수준인지를 세상으로부터 한 번은 평가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신중현은 곧 한국 록 역사다. ‘미인’ ‘봄비’ ‘빗속의 여인’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아름다운 강산’…. 늘 전위에 있었다. 신중현이 제작한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1987년)은 한국 최초의 컴퓨터 댄스 음악. 지금은 일반화된 녹음 소프트웨어 ‘프로툴스’를 한국에서 처음 쓴 것도 신중현이다. 작업실에서 그는 ‘빽투더퓨쳐’의 브라운 박사,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기계 장비의 성채에 둘러싸여 있었다.


―표지가 역대 발표한 음반 중 가장 강렬하다. 직접 작업했다고….

“‘셀프 카메라’부터 찍었다. 이곳 작업실에 카메라 타이머를 맞춰 놓고 혼자 기타를 둘러멘 채 촬영했다. ‘포토샵’으로 컬러를 덧입혔다.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맞게 색채를 휘두르고 내 얼굴도 찌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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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들들과 처음 앨범 녹음을 한 이유는 뭔가.

“예전엔 나도, 그들도 각자 밴드나 일이 있었다. 이제 와 앨범을 내려니 내 밴드가 없는 거다. 아들들을 부르는 수밖에…. 다들 짬이 날 때만 모이다 보니 제작에 3년이 걸렸다.”

대를 이어 한국 대표 기타리스트가 된 장남 대철, 차남 윤철 모두 거장을 위해 자신의 전공 기타를 내려놨다. 대철은 베이스기타를, 윤철은 키보드를 연주했다. 막내 석철은 전공대로 드럼을 맡았다. 몇 곡에서는 신윤철의 동료인 이봉준이 베이스기타를 쳤다.

―4부자의 4인조 밴드 녹음 과정은 어땠나.


한국 록의 대부 음악가 신중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경기 용인시 자택 겸 작업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역시 아들들이 가장 편하고 든든하다. 내 음악을 너무 잘 아니까. 잘 안 풀릴 때는 아들들과 같이 바람을 쐬러 나갔다. 강원도까지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새 앨범에 실린 8곡 중 ‘빗속의 여인’과 신곡 2개를 빼면 5곡이 대중엔 생소하다.


“‘겨울 공원’ ‘안개를 헤치고’ ‘어디서 어디까지’ ‘바다’ ‘그동안’. 일전에 발표한 것 중 아쉬운 것들이다. 초창기에는 (음반사가 보채) 녹음이 거의 날치기로 이뤄졌다. 하루에 판 한 장을 만들기 위해 12곡씩도 녹음했다. 다시 제대로 녹음해 선보이고 싶었다.”

―미리 들어봤는데 급류가 흐르듯 굽이치는 기타 음이 인상적이더라.

“손가락이 아니라 몸에서 뱉어 내는 소리다. 나의 새로운 주법이다. 내적 주법이라고 하겠다. 벤딩(손가락으로 줄을 밀어 올리는 주법)을 통해 몸 소리를 낸다. 무술을 생각해보자. 서양 무술은 외적이다. 스포츠다. 동양 사람은 힘으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쿵푸, 유도, 태권도가 스포츠화하면서 맥을 못 추는 것을 보라. 내공이나 무술은 기를 갖고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공으로, 기로 내는 소리다.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새 주법에 이름을 붙인다면….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주법 개발에 몰입한 지 20년 정도 됐다. 노자가 ‘진정한 도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했듯 내 주법을 어떤 이름의 틀에 넣고 싶지 않다. 상표가 붙으면 뭐든 장사가 된다. 사이비가 된다.”

―내적 주법을 위해 따로 수행을 했나.

“일부러 명상이나 수련을 한 것은 없다. 생활의 일거수일투족에 성의를 다하는 것뿐. 혼자 사니 식사를 직접 해결한다. 밥은 일인용 돌솥에 짓고 반찬은 전부 조림이다. 메루치(멸치), 콩, 생선을 사다 간장을 붓고 조려 버린다. 매일 오전 7시쯤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신중현은 오래전부터 노장 사상에 심취했다. 1970년대 활동 금지 때 우연히 ‘장자’를 펼쳤다가 위안을 얻은 뒤다. 1990년대에 앨범 ‘무위자연’ ‘김삿갓’을 내며 자연과 풍류, 방랑의 미학을 노래했다.

―오지 캠핑을 즐긴다고 들었다.


“몸에 편한 큰 차(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허머’)를 몰고 팔도강산 안 다닌 곳이 없다. 지명은 잘 모른다. 그냥 스쳐지나가니까…. 씻는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해결했다. 카메라를 들고 아름다운 바다며 산이며 찍는 것을 즐긴다.”

―좋은 것을 보면 노래도 떠오르겠다.

“‘김삿갓’ 앨범이 그랬다. 새 앨범에 실은 ‘바다’란 곡도 대표적이다. 그룹 ‘세나그네’ 때 멤버 이남이(베이스기타), 서일구(드럼)와 전국을 돌다 동해를 보고 지은 노래다. 지금은 둘 다 고인이 됐다. 들어보면 ‘역시 젊음이란 게 좋긴 좋구나’ 하고 느낀다.”

―지난해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서 이선희가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감동적이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쪽까지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곳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강산 2’라도 내면 좋겠지만 내가 그때까지…. 늙는 게 제일 문제다.”

그의 자택이자 작업실은 전원주택과 밭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4부자 4인조 밴드는 이곳에 모여 작업에 매진했다. 전문 스튜디오나 엔지니어에 맡기는 대신 녹음, 믹싱, 마스터링 모두 신중현이 직접 해냈다.

―기타 주법뿐 아니라 창법도 새로운 것을 쓴 것인가.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역시나 내적 창법이다. 구절마다, 단어마다 속으로 악센트를 주기에 밀도가 높다. 숨소리까지 받아줄 수 있는 첨단 마이크 시스템 덕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녹음은 최고의 아날로그 기자재로 했다. 풍부하고 인간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신곡 ‘사랑해 줘요’는 어떤 곡인가.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인지.

“지은 지 4, 5년 됐다. ‘사랑한다’는 굉장히 흔한 말이다. 한편으론 얘기하기 꺼려지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랑이 메말랐다. 만남도, 결혼도 계산적이다. 그에 대해 할 얘기가 있었다. 나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는 도가 텄다. 노래로 만들 만하다. 허허.”

―대작 신곡 ‘그날들’은 대단히 처연하다. 3분이 넘는 후주에선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내 비참했던 과거, 내가 핍박받던 시절에 느낀 감정을 담았다. 좀 비참하다, 노래가. 너무 살벌하다. 뒷부분에서는 사이키델릭이 나온다. 내 지나온 날이 너무 비참했기에 분풀이를 기타로 한 것이다. 다른 음악엔 틀이 있지만 록 음악은 자유다. 모든 걸 다 깨뜨려 버리고 자유를 부르짖는다.”

신중현은 최고 전성기에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970년대 독재정권에서 국가 찬양 곡을 주문했으나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미인’ ‘거짓말이야’ 등 그의 곡이 대거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남산 공안분실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했다. 정신병원과 감옥에 집어넣어졌다.

―요즘 케이팝이 세계로 뻗어나간다.

“그들(케이팝 그룹)은 시각적 음악, 미국식 음악, 쇼적인 음악이다. 지금 세대에 그게 맞는 거니까 인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제가 하는 것은 쇼를 떠나 인간적 감각을 주장하는 음악 세계다.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하려는 시도다.”

―신작 마지막 곡은 ‘그동안’이다. ‘그동안 기뻤오/그동안 즐거웠오’의 가사가 작별인사 같다.

“실은 고별사로 생각했다. 근데 이제와 보니 (작별은) 아닌 것 같다. 쉴 새 없이 새로운 것을 내놓고 싶다는 생각으로 충만하다. 이미 아들들과 녹음해둔 분량이 많다. 계속 내놓고 싶다. 가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연도 타진 중이다. 2013년 이후 6년 만의 무대가 될 것이다.”

―지난해 국내 1호 여성 드러머이자 평생의 반려자인 명정강 여사가 별세했다.

“나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생일이든 어버이날이든 3년간 가족 행사를 갖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지내자고 아들들과 약속했다.”

―풍파를 많이 겪었다. 시간을 돌려 1950, 60년대로 돌아간대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음악가의 업을 택할 것인가.

“내가 지금 죽지 않으려는 이유가 다시 태어나기 싫어서다. 어려서부터 상상도 못할 고생을 많이 했다. 죽으면 다시 태어날까 봐 겁이 난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모든 고생을 다시 겪는다고 해도 기타를 치고 음악을 만들고 싶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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