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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팬스쿨’ 위축된 韓, 외무성 힘못쓰는 日… 외교시계 멈췄다[인사이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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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팬스쿨’ 위축된 韓, 외무성 힘못쓰는 日… 외교시계 멈췄다[인사이드&인사이트]

신나리 정치부 기자 입력 2019-07-08 03:00수정 2019-07-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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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속 갇힌 한일관계
징용판결후 日보복 예견됐지만 정부, 日발표전 사전통보 못받아
한때 주일대사 일왕과 오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워져
아베, 외무성 온건론 배제 양상… 한일 외교채널 사실상 ‘먹통’
“한일 과거사 징벌논리로 접근 문제… 교환-협상 통해 해법 찾아야”
신나리 정치부 기자
“일본이 사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알려주지 않았다.”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전격 발표한 1일 청와대와 정부는 격앙된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사전 통보 없이 발표돼 유감”이라고 했다. 불과 닷새 전인 지난달 28일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과 면담을 나눈 뒤였다. 한일 수교 이래 사상 초유의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를 두고,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기습적이고 일방적인 보복에 나섰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무너지고 있는 한일 외교 채널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7년 12월 외교부 주도의 태스크포스(TF)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 검토 결과를 발표한 이후 삐걱댔던 한일 관계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으면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최소한의 핫라인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전례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 외무성 배제하고 보복 조치 준비한 일본 경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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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이번에 취한 경제 보복 조치는 일찍부터 예견됐다. 대법원 판결 한 달 뒤인 지난해 11월, 고노 외상이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한 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까지 “관계 부처에 구체적인 조치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히며 경제 보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올해 3월 12일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금융담당상이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의 정지, 비자의 발급 정지라든지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청와대는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에 대해 초기부터 준비에 나섰다고 밝혔다.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3일 “우리 정부가 일본이 경제 보복 차원에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품목과 관련한 ‘롱리스트(후보 목록)’를 사전에 준비해 뒀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이 G20 정상회의를 마치자마자 수출 규제 조치를 내놓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경산성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미 회담이 열리는 상황에서 일본 언론들이 경제 보복 조치를 예고하자 그때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인지한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들이 급히 일본 외무성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모른다”는 반응뿐이었다. 한국에 대한 대항 조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경산성은 한일 관계 담당 부처인 외무성에도 사전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사정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이유는 두 가지다. 이번 조치가 아베 총리가 직접 지시해 이뤄졌거나, 한국과의 외교 채널인 외무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산성 출신이자 아베 총리의 핵심 측근인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이 아베 총리와 경산성 간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면서 경산성 내부에서만 자료를 만들었을 것으로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분석하고 있다.

○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주일 대사-일왕 점심

강제징용 배상 판결 논란이 경제 분쟁으로 확전되자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 간 전통적인 외교 채널에 갈등 해결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는 “기업 피해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외교적 노력은 외교부에서 대책을 만들 것”이라며 관련 부처로 공을 넘겼지만, 일본 경산성의 단독 플레이에서 알 수 있듯 외교부-외무성 채널로만 소통해선 전체 그림을 알기 어려운 이슈가 돼 버렸다.

여기에는 정부 내 일본통, 이른바 ‘저팬스쿨’의 기반이 취약해진 것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는 중량급 인사들이 주일 대사로 부임했거나, 정부와 정치권 내에 지일파가 늘 일정 수준 포진해 있었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을 비롯해 최상용 조세형 라종일 권철현 신각수 유흥수 등 김영삼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주일 대사는 일본 정계에서도 함부로 ‘패싱’하기 어려운 핵심 인사들이 주로 맡았다. 그 때문에 한일 간 교착 상태가 발생하더라도 주일 대사가 언제든 일본 외무성은 물론 총리와도 접촉할 수 있었다.

권철현 전 주일 대사는 2011년 한국으로 귀임하기 전 아키히토 당시 일왕과 이례적인 오찬을 갖기도 했다. 주일 한국대사로선 46년 만에 일왕과 점심을 한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주일 한국대사가 일왕과 점심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본 정계와 정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밖에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장면”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일 대사의 정치적 위치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남관표 주일 대사가 5일 일본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 재개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데 대해 청와대가 곧바로 “청와대와 조율되지 않은 입장”이라고 선을 그은 건 단적인 예다.

외교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팬스쿨의 꽃’으로 불려온 동북아국장 출신 상당수가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나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현 정부 외교라인의 거의 유일한 정통 ‘저팬스쿨’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도 2012년 동북아국장 당시 GSOMIA 체결 논란 당시 옷을 벗었다가 6년 만에 공직으로 복귀했다. 그는 정부 출범 직후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부위원장을 지낸 뒤 지난해 9월 차관급인 국립외교원장에 취임했다가 올해 5월 23일 차관으로 부임했다.

그런 조 차관 역시 대법원 판결 8개월 만에 정부가 한국 기업과 일본 강제징용 책임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배상하자는 ‘1+1 기금’안을 내놓기 전 비공개로 일본을 방문해 이 안을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

○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채널부터 확보해야

일본 외무성의 사정도 그리 좋지는 않다. 이번 보복 조치를 경산성이 주도한 것 외에도 종종 총리 관저의 핵심 의사 결정 과정에서 외무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외무성 당국자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지난달 19일 한일 기업이 자발적 기금을 만들어 배상을 하는 화해안을 제시했을 때 외무성 내부에서는 긍정적인 해석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안을 바탕으로 외교 협의를 해 나가면 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리 관저는 이를 한마디로 거절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한 상태가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 직후 외무성은 총리 관저에 추가 의견을 내지 못했고, 곧바로 한국 정부의 제안에 ‘거절’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전문가들은 양국 간 외교 채널이 사실상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분간 정상 차원에서의 타협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각각 내년 4월 총선과 이달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는 지지층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선거용 이슈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외신 기자는 “두 정상이 서로를 때리는(bashing) 데서 정치적 희열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교환과 협상의 논리로 풀어가야 하는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로 징벌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아베 총리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지점이나 측근을 외과수술 식으로 정밀 공략하면 한일 간 외교적 채널이 가동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긴다. 익명을 요구한 전 차관급 인사는 “지금으로선 다양한 채널보단 질적으로 유효한 채널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존의 외교 경로뿐 아니라 당장 추가 경제 보복 조치를 주무르고 있는 경산성이나 총리 관저, 의회 등 전방위적인 물밑 접촉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워싱턴 카드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미국이 아직 일본 측에서 보복이 실시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지켜보고 있지만 앞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7일 한 방송에서 “미국의 중재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나리 정치부 기자 journari@donga.com
#강제징용 배상 판결#한국 수출 규제#일본 경제보복#아베#한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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