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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칼럼]문 대통령이 비핵평화협상의 촉진자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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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칼럼]문 대통령이 비핵평화협상의 촉진자가 되려면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입력 2019-07-04 03:00수정 2019-07-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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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운전자’ 자처 文대통령, 판문점 회동서 ‘창밖의 남자’
영변 핵단지 과대평가는 미-북 협상 저해하는 길
핵시설 전면 영구 불능화 설득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지난 일요일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판문점 번개회동은 트럼프가 쇼 비즈니스의 귀재로서 흥행에 대박을 거둔 역사적 이벤트였다. 세계와 미국의 주요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자신을 한반도 평화의 사도로 부각시키는 데 열을 올림으로써 대선 캠페인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순발력을 보여줬다.

정상회동에서 어떤 밀담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북 실무협상을 2, 3주 내에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지속되어온 교착 상태를 타개할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회동이 비핵평화의 환상만 키우는 깜짝쇼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지는 북한이 실무회담에 가져올 입장에 달려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주역을 맡은 이벤트에 조역으로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왠지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한반도의 운전자’를 자처하던 문 대통령이 불과 1년 만에 ‘창밖의 남자’로 전락하고 미북 정상이 밀담을 나누는 동안 옆방에서 대기하는 신세가 된 것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비핵화 목표 달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면 이보다 더한 수모도 얼마든지 보상받을 수 있다. 문제는 중재자 촉진자가 되겠다는 의욕만 앞섰지, 아직까지 비핵평화협상에 기여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촉진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 자질은 미북 간 소통의 장애를 해소하고 접점을 마련할 외교적 역량인데 핵 문제의 본질과 협상력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북 간의 소통을 촉진하기는 고사하고 한미 간, 남북 간의 소통조차 어렵다. 특히 북한이 포기하겠다는 영변 단지의 가치와 비중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과대평가는 미국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보상에 대한 북한의 기대 수준만 높여 결과적으로 미북 협상을 촉진하기보다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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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보유한 핵 자산의 대부분은 이미 생산한 핵무기와 핵물질, 핵탄두 운반용 미사일로 구성되어 있다. 영변 단지의 잔존 가치는 핵무기 및 핵물질 보유량과 영변 단지 밖에서 생산할 수 있는 핵물질의 규모에 반비례한다. 북한이 이미 20∼30개의 핵무기나 이의 제조에 충분한 핵물질을 확보했다면 핵물질 생산시설을 모두 폐기하더라도 최소 억지력을 유지하는 데는 지장이 없고 영변 단지만 폐기할 경우에는 영변 밖에서 가동하는 핵시설을 통해 핵무기를 계속 늘려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영변 핵단지가 폐기되면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가 될 것”이라고 우기며 “그런 조치가 실행되면 국제사회는 제재 완화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기를 줄이기는커녕 계속 증강해 나가는 상태를 문 대통령이 정말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로 믿고 있다면 촉진자 역할은 차라리 단념하는 것이 낫다.

김정은이 혹시라도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에 고무되어 영변 단지만으로 제재 해제가 가능할 것으로 오판하고 하노이에 간 것이라면 협상 타결이 아니라 파탄의 길로 안내한 셈이다. 문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조차 “하나의 단계다. 중요한 단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로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었겠는가. 영변 단지의 가치에 대한 한미 간 견해차도 좁힐 수 없을 만큼 소통이 막혀 있다면 한국의 촉진자 역할을 미국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문 대통령이 촉진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영변 단지의 폐기만으로는 미국과의 딜이 불가능한 이치를 알아야 하고 비핵화의 입구로서 김정은에게 북한 내 모든 핵시설의 동결과 영구 불능화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북한도 영변 단지가 가장 중요한 핵 자산이라고 우긴다면 해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그렇게 소중한 영변은 비핵화 최종 단계까지 잘 지키는 대신 그 이외의 모든 핵 자산을 내어놓으면 북한이 요구하는 모든 제재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비핵화 최종 상태와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과 원칙을 명시한 큰 틀의 포괄적 합의에 김정은이 조속히 응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폐기도 개시하기 전에 핵심 제재가 해제되고 남북경협이 재개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는 것은 김정은을 희망 고문하는 것이다. 제재 해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건을 솔직히 설명하고 비핵평화협상이 실패할 경우 미국의 군사적 옵션을 정당화시켜 줄 위험성도 주지시켜야 한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북미 판문점 정상회동#트럼프#김정은#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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