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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한국 축구선수들은 왜 독일 무대를 선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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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한국 축구선수들은 왜 독일 무대를 선호할까?

최현길 기자 입력 2019-07-04 05:30수정 2019-07-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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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쿠젠 시절 차범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입장권 사기가 보통 어렵지 않았다. 푸른 잔디 위에서 펼쳐지는 2시간 동안의 게임은 글자 그대로 축구의 향연이었다. 이 예술 같은 축구를 보고 어느 누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 얘기가 아니다. 40여년 전 한국 축구인의 눈에 비친 독일(당시 서독)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의 모습이다.

독일축구협회가 주관한 코칭코스를 위해 1977년 9월부터 3개월간 독일에 머문 장원직 우신고 코치는 월간축구(1978년 3월호)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많은 지도자를 외국에 유학시키는 것과 병행해 장래성 있는 선수들을 많이 유학시켜 실제로 세계적 수준의 축구는 이런 것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뿐만 아니라 행정 책임자나 심판원 등 여러 분야 관계자들이 선진국의 것을 배워서 우리의 실정에 맞게 소화하도록 한다면 한국축구 발전은 한걸음 빨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고 당부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언처럼 들린다. 그만큼 당시 분데스리가의 인상은 강렬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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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함부르크 구단 초청으로 1977년 5월부터 18개월간 유학한 최은택 한양대 코치는 “독일축구협회는 약 350만 명(1975년 통계)의 회원과 1만7100개의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약 200만 명이 규칙적으로 축구를 하고 있으며, 약 25만 명은 학교끼리 또는 직장끼리 친선경기를 갖는다”(월간축구 1979년 2월호)며 폭넓은 축구 저변을 부러워했다.

유기흥 전 국가대표선수도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한국은 좀 더 과학적인 연구,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인이 부족하다”(월간축구 1979년 11~12월호)며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과 독일축구의 인연은 상당히 오래됐다. 독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차범근이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분데스리가를 직접 보고 배웠다.

1980년대 독일에서 프로생활을 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차범근도 “조직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단 운영과 팬들의 응원 덕분에 선수들이 뛸 맛이 나는 무대”라고 분데스리가를 소개한 적이 있다.

차범근의 독일 진출 이후 한국 선수들의 관심이 분데스리가로 쏠린 가운데 박종원, 박상인, 김진국 등이 진출을 모색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김주성, 황선홍, 이동국, 심재원 등이 독일 무대를 밟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차두리,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구자철, 지동원, 박주호, 손흥민 등이 활약했다.

정우영(오른쪽 첫 번째)과 권창훈(오른쪽 두 번째)이 프라이부르크 훈련 중 러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프라이부르크 SNS

최근 다시 분데스리가가 화제다. 권창훈이 디종(프랑스)을 떠나 프라이부르크에 입단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던 정우영도 영입했다. 분데스리가는 지난해에도 태극마크를 단 굵직한 선수들의 잇따른 이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청용.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재성.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로써 이제 권창훈과 정우영을 비롯해 지동원(마인츠), 이청용(보훔), 이재성, 서영재(이상 홀슈타인 킬) 박이영(장크트 파울리) 등이 다음 시즌 분데스리가를 누빈다. 베테랑 구자철 또한 독일 무대 잔류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특정 리그에 한국선수들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한국선수들은 분데스리가를 선호하는 것일까. 이적 및 연봉 협상을 주도하는 에이전트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잉글랜드의 경우 워크 퍼밋(노동 허가)을 받기가 까다로운 게 걸림돌이다. 워크 퍼밋은 A매치 출전 횟수, 출신국의 FIFA 랭킹 등을 따진다. 스페인은 구단 간 편차가 심한 데다 같은 언어를 쓰는 남미 선수들의 공급이 워낙 많다 보니 아시아권 선수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 외국인 선수 쿼터가 2명에 불과한 이탈리아도 비슷한 상황이다. 프랑스도 같은 언어를 쓰는 북아프리카 선수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에 반해 독일의 경우 리그 수준은 높지만 아시아권 선수들이 적응하기에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한다. 또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 이미 검증됐다는 점도 강점이다. 일본 출신과 함께 많은 선수들이 성공 스토리를 썼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가 적다는 의미다. 아울러 특유의 성실성과 근성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덕분에 독일 구단들은 계속 한국선수를 믿고 영입한다는 게 에이전트들의 설명이다. 신뢰를 쌓으며 굳건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에이전트들의 역할도 한몫했다.

또 독일은 자국선수보호를 위한 등록인원(12명)만 채우면 외국인 선수에 대한 쿼터 제한이 없다. 그만큼 외국인 선수에게 문호가 넓은 리그다. 기술 및 체력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선수들이 밀리긴 해도 충분히 경합할 정도는 된다고 한다.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이는 독일이 편하다고 한다.

권창훈의 에이전시 월스포츠의 류택형 이사는 “독일은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관중도 많다. 독일 무대는 우리 선수들이 유럽으로 가는 관문 같은 존재”라면서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레버쿠젠 시절 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 5대 리그 중 독일은 40여년간 이어진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또 손흥민(토트넘)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로 진출하는 데 발판이 된 곳도 독일 무대다. 차범근처럼, 손흥민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분데스리가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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