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리더십은 무색, 투명, 무취…“카리스마 리더십 잊어버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일 15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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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가는 리더십 전문가입니까? 이상하게 들리시나요? 아니기도 하고 그렇기도 합니다. 정신분석 경험에서 리더가 참조할 것들이 많습니다. 질문을 드립니다. 명령과 지시가 리더십의 핵심일까요?

명령과 지시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집니다. 늘 저항이 따라붙죠. 저항은 소통과 협력의 걸림돌입니다. 분석가인 저는 분석 받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 중립적이고 무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자유연상을 하도록, 터놓고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삶에 대한 신념, 정치적 성향, 결혼관, 가족 관계, 취미, 기호 식품 등 말입니다. 말을 줄이면 분석이 정체됩니다. 반면 분석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리더는 팀원의 이야기가 설령 지루하거나 말이 덜되어도 참으면서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흔히 리더들은 중간에 말을 끊고 ‘조언과 충고’를 하죠. 그때 참아야 합니다. 기막힌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요청을 들어주지 못해도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주었다면 진정으로 고마워할 겁니다. ‘마음으로 듣기’는 리더십의 출발점입니다. 듣기는 공감(共感)과 같이해야 합니다. 공감은 소통의 입구(入口)입니다. 소통은 리더십의 기반입니다. 공감과 ‘공감하는 척’은 차원이 다릅니다. 들통이 납니다. 귀와 입이 있다고 누구나 잘 듣고 제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꾸준한 수련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말하려면 공감을 기반으로 기법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변화를 원하는 리더와 현상 유지의 편안함을 포기하기 싫은 팀원들 간에는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일어납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리더에게는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이 생깁니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실의 문제인지, 자신의 과거에서 불러온 문제인지를.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으시죠? 불성실한 업무 처리처럼 분명히 싫어할 이유가 있지 않다면,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식이 아닌지를. 정신분석에서는 전이(轉移) 현상이라고 합니다. 왠지 호감이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이 현상은 아주 흔합니다. 누구나 직장에서는 가면을 써야 하고, 나를 지키려면 ‘성격’이라는 갑옷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아이언 맨’입니다. 갑옷을 입고 방어, 공격 도구로 심리적 방어기제들을 사용합니다. 우화 속 여우의 말, ‘신 포도’는 부정과 합리화라는 방어입니다.

리더는 사람과 감정을 다룹니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관리자와 다릅니다. 리더의 도구는 마음의 이해입니다. 내 마음과 남의 마음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다면 리더십이 살아납니다. 내 마음에 어린아이가 있나요? 부모님의 꾸지람이 숨어 있나요?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어른스러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나요?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내 마음의 누구와 상대방 마음의 누가 나누고 있는 건가요? 리더십의 기본은 이렇게 마음과 마음의 분석입니다.

대한민국 리더십 현황은 위기입니다. 명령, 지시, 계몽이 민주, 자유, 평등으로 대치되는 동시에 고령화에 따른 세대 격차와 갈등도 두드러집니다. 유교 가치관의 희석과 함께 수평적 관계와 개인의 고유성이 강조됩니다. 자유, 자발성, 인간다움이 가치가 되는 세상이 와야 하나 리더의 입장은 어렵습니다. 힘들어도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 고쳐야 합니다.

리더는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이끌려고 하기 전에 나를 성찰하고 계발해야 합니다. 분석가가 인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리더도 지시와 충고보다는 팀원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무의식의 힘을 무시하는 리더는 실패합니다. 인간은 무의식이 지배합니다. 적극적인 저항도 있으나 피동적인 침묵, 지연, 망각도 방해꾼입니다. 무의식은 몸으로도 표현됩니다. 정면으로 마주 보면 쓸데없이 적대감이 올라옵니다. 팔짱을 끼면 소통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선을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악수할 때 손을 잡고 끌지 않습니다. 눈을 보며 미소 지으며 합니다. 리더는 예의, 정중함, 부드러움을 갖춰야 합니다. 리더십은 인격(人格·사람 인, 바로잡을 격)입니다. 늘 바로잡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리더십은 체화(體化)되어야 합니다. 뇌에 길을 내는 겁니다.

리더는 남에게서 나를 발견합니다. 리더는 남이 나에게서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대화, 공감, 설득, 인내, 현명함, 유머를 써서 나와 남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소통의 장벽을 녹여냅니다. 21세기 리더십은 공기와 같이 무색, 투명, 무취여야 합니다. 이제 카리스마 리더십은 잊어버리십시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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