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논란’ 잠잠해지니…日 수출규제 ‘설상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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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1일 1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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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News1 DB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News1 DB

한국 반도체 업계가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위기에 처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反(반)화웨이’ 사태가 양국간 합의로 봉합되는가 싶더니 일본에서 반도체 공정 핵심소재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강화라는 악재가 터졌다.

한국이 전세계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D램 가격이 6개월째 하락하며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더욱이 이번 조치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사실상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로 여겨지고 있어 양국간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 경우 민간 기업 차원에서 해결책 찾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에 대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관련 소재 Δ플루오린 폴리이미드(Fluorine polyimide) Δ고순도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 Δ리지스트(Photoresist) 등 3가지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한국을 ‘화이트국가’로 지정해 수출 허가 심사를 면제하는 등 혜택을 제공했다면, 앞으로는 3가지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 수출시 개별 기업별로 수출 허가를 받아야돼 그 과정이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는 전체의 90%, 고순도 불화수소는 전세계 생산의 70% 가량을 거의 일본 기업이 ‘독점’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오후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4.30/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오후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4.30/뉴스1

일본 정부는 이같은 조치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한일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손상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내린 판결에 대한 반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이번 결정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에게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만약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강화 조치로 인해 생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향후 한국 경제 전반으로의 위기가 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해당 기업들은 일본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내부적으로 대책회의에 나서며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G2 무역전쟁’으로 인한 대외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고 이로 인한 ‘화웨이 사태’까지 겹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이 무역분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화웨이 사태는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이번엔 ‘이웃나라’ 일본에서 소재 수출 규제라는 더 큰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국내에 일부 품목을 대체할 수 있는 업체들이 있지만 세계 1~2위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요구하는 만큼의 물량을 공급하기엔 빠듯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주완 하나금융연구소 전문위원은 “국내에도 일부 중소 소재업체들이 불화수소, 리지스트 등을 생산하지만 삼성과 SK하이닉스의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업체들이 캐파를 늘리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돼 어떤 형태로든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입장에선 D램 가격 하락으로 올 상반기에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더욱 넘기 힘든 장애물에 마주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4일 오전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M15 신공장에서 열린 준공식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SK하이닉스 제공)2018.10.4/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4일 오전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M15 신공장에서 열린 준공식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SK하이닉스 제공)2018.10.4/뉴스1

이 연구위원은 “D램 가격 하락은 생산량 조절과 공급처 다변화 등의 시장 논리로 개별 기업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면서도 “이번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외교적 이슈가 얽혀있어 더욱 민감해 해결방안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업계 일각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번 사태로 인해 실제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줄여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멈출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태의 ‘장기화’ 여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화웨이 사태처럼 양국 정상간 담판으로 단번에 매듭지어질 수도 있는가 하면 해묵은 갈등으로 악화일로에 치닫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수출을 제재했을 당시 인텔, 퀄컴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요구했듯 일본 기업들이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對韓(대한) 수출’ 감소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 업체들이 대만이나 미국, 유럽 등의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들로 공급처를 다변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입는 피해 규모가 더욱 클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녹실간담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일본 조치와 관련한 동향과 대응방안을 점검하고 민간업계와 공동으로 긴급대응체계를 가동하고 나섰다. 아울러 정치적 사유에 따른 경제보복을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등에 따라 일본의 이번 조치를 WTO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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