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빈집-미싱 공장을 갤러리로… ‘문화변방’의 대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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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의 빈집 프로젝트 주목
금천문화재단, 빈집-공장 임차… 전시장-예술교육 공간으로 활용
작가 고용해 주민참여 프로도 운영… 서울시-구 비용 분담… 3곳 문 열어
작가 “허름한 전시장 상상력 고취”… 주민 “다양한 예술체험 좋아요”

서울 금천구 가산로의 오래된 건물 안에 마련된 빈집프로젝트 2가의 모습. 낡은 벽지 위에 걸린 감각적인 미술 작품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서 작품 전시를 기획하고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술 작가 이규원 씨(왼쪽 사진)는 “작가로서 시야를 넓히고 상상력을 키우는 색다른 공간”이라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금천구 가산로의 오래된 건물 안에 마련된 빈집프로젝트 2가의 모습. 낡은 벽지 위에 걸린 감각적인 미술 작품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서 작품 전시를 기획하고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술 작가 이규원 씨(왼쪽 사진)는 “작가로서 시야를 넓히고 상상력을 키우는 색다른 공간”이라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로6.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버텼을 것 같은 3층짜리 상가건물이 있었다. 1층에는 미싱 수리업체, 컴퓨터 수리업체, 성인용품 매장 등의 간판이 걸렸다. 2층으로 통하는 좁고 낡은 계단이 보였다. 2층은 어르신들의 춤 동호회 모임 장소라고 했다.

다시 한 층을 더 올라가자 흰색 커튼으로 가려놓은 공간을 가운데 두고 세 개의 방이 있었다. 오래전에는 이곳이 가정집이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크기 순서대로 안방과 작은방 2곳인 듯했다. 지금은 방마다 그림들이 있었다. 가상화폐에서 쓰이는 암호들과 미국의 록밴드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을 조합한 그림.

“가상화폐에 담긴 욕망과 대중 스타들을 향한 동경과 그들이 바라는 목표들이 뭔가 공통적인 의미가 있음을 표현한 작품인데….”

이해는 쉽지 않지만 친절한 설명을 건넨 이는 해당 작품을 그린 미술작가 이규원 씨(39)였다. 이 씨는 올 4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낡고 허름한 건물 공간에 미술, 인테리어 작품을 전시하고 관련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빈집프로젝트 2가(家)’다.

금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빈집프로젝트는 금천구가 다른 자치구에 비해 예술 작품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됐다. 2017년 11월 첫 번째 공간인 빈집프로젝트 1가가 문을 연 데 이어 지난해 2, 3가까지 조성됐다. 2가 건물은 과거 미싱 작업장으로 쓰였다. 가장 작은 방 위에는 미싱 재료를 쌓아뒀을 창고였던 다락방으로 통하는 계단형 사다리가 그대로 있었다.

빈집프로젝트는 오래된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걸 추구하지 않는다. 기존 공간과 예술 작품의 색다른 조화를 꾀한다. 2가에 걸린 그림들 벽면에는 군데군데 뜯어진 벽지와 오래전 박혔을 못들이 보였다. 어떤 그림은 이곳을 처음 빌렸을 때부터 있었다는 나무토막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이 씨는 “깔끔하게 꾸며진 갤러리에 익숙했던 터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예술가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4대 보험이 되는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씨를 비롯한 예술 활동가 3명과 예술 코디네이터 2명이 빈집프로젝트의 전시를 기획하고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직원으로 고용된 상태다. 서울시와 금천구가 인건비를 포함해 사업비를 절반씩 부담하는 ‘시-구 상향적 협력적 일자리 창출사업’의 일환이다.

빈집프로젝트의 핵심은 작품 전시 자체보다는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에 있다. 금천구민을 포함해 서울시민이면 작가들과 대화하고 직접 작품을 그려 볼 수 있다. 에코백 등 친환경 소품이나 타일 같은 인테리어 용품을 직접 만드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빈집프로젝트 2가에서 프로그램 2개를 수강 중인 허정만 씨(49)는 “젊은 예술가들과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는 시간, 내 손으로 직접 뭔가를 디자인하는 과정 모두 재밌다”고 말했다. 금천구 주민인 허 씨는 “사실 금천구는 문화, 예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이런 프로젝트로 인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술가와 주민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이 잇따르자 금천구는 빈집프로젝트의 ‘나비 효과’가 확산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낡은 건물을 임차해 주민들을 위한 개방형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게 목표였다. 금천문화재단 관계자는 “일단 마을에 활력을 주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미래에는 성수동, 망원동처럼 낡은 옛것이 오히려 매력이 되는 새로운 명소 탄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금천문화재단#빈집프로젝트#예술 작품#금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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