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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인질사태-해병대테러… 美 뼛속까지 ‘이란發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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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인질사태-해병대테러… 美 뼛속까지 ‘이란發 트라우마’

이세형 기자 , 이윤태 기자 입력 2019-06-29 03:00수정 2019-07-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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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이란을 지독하게 미워하나… 극단으로 치닫는 미-이란 갈등
1979년 11월 4일 이란 대학생들이 같은 해 2월 축출된 후 미국으로 피신한 팔레비 왕의 송환을 요구하며 수도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기 위해 담장을 넘고 있다. 이 사태로 미 외교관과 국민 52명이 444일간 억류됐다(위쪽 사진). 4년 뒤인 1983년 10월 23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미 해병대사령부 건물을 공격해 미군 241명이 숨졌다. 미 해병대원이 테러로 산산이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CNN 홈페이지
미국과 이란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 군사 충돌로는 번지지 않았지만 최근 거의 매일 양국 지도자가 ‘막말 대결’을 펼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 국제 사회의 자제 요청에도 ‘정신 장애’ ‘말살’ 등을 주고받는 두 나라의 갈등 상황을 보면 언제 군사 대결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경을 맞댄 것도, 수천 년의 역사적 연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두 나라는 서로를 극도로 적대시하고 있다.

○ 1979년 인질 사건으로 트라우마 시작


미국의 뿌리 깊은 반(反)이란 정서는 1979년 11월 4일 시작됐다. 이때부터 1981년 1월까지 444일간 이란 혁명세력이 미 외교관과 국민 52명을 억류했다. 이른바 ‘이란 인질 사태(Iran Hostage Crisis)’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그 어떤 단체도 다수의 미국인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억류하진 못했다. 세계 최강대국의 자존심은 이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당시 이란 국민은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 전 이란을 통치했던 팔레비 왕조를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컸다. 하지만 지미 카터 당시 미 행정부는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의 미 입국을 허가했을 뿐 아니라 이란의 신병 인도 요구도 거부했다. 결국 팔레비 왕의 인도를 요구하던 과격파 학생 시위대가 시위 도중 수도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으로 난입했다.



4년 후 이란은 또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1983년 레바논의 친이란 성향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수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사령부 건물을 공격했다. 이 사건으로 미군 241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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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전 대통령은 인질 사태에 대한 초기 진화 실패 등으로 단임에 그쳤다. 후임자가 바로 ‘강한 미국’을 외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레이건 집권 8년, ‘아버지’ 조지 부시 집권 4년 등 카터 이후 12년간 미 정치권의 보수화 움직임도 가속화했다.

이 성향을 이어받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표현했다. 나머지 두 나라와 달리 당시 이란은 부시 정권과 직접적이고 표면적으로 갈등을 빚은 문제가 없었다. 전년도 9·11테러 때에도 가장 먼저 위로성명을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이란이 북한, 이라크와 묶여 의외”라고 했지만 부시 정권은 단호했다. 이를 두고 한 중동 외교 소식통은 “1979년과 1983년 사태로 미국에는 이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뼛속까지 깊게 박혔다. 그 어떤 나라도 미국의 자존심에 이렇게 연이어 상처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갈등의 기폭제는 지난해 5월 미국의 일방적인 서구 5개국-이란 핵합의 탈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핵합의가 지나치게 이란 편향적이라며 프랑스, 독일 등 동맹과 상의 없이 이를 탈퇴했다. 이란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미국은 이란산 원유 및 광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이란 정규군 조직인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며, 중동에 추가 파병과 전폭기 및 항공모함 배치 등을 단행하며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이란도 20일 미 무인기를 격추하며 맞서고 있다.

○ 이란의 중동 영향력 확대 우려

현재 미국이 이란에 대해 가장 날을 세우는 대목은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Regional Activity)’이다. 과거 중동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이슬람 국가의 세가 컸다. 미국도 바레인, 쿠웨이트, 요르단 등 역시 수니파 국가에 기지를 두고 미군을 주둔시켰다. 하지만 ‘시아파 맹주’ 이란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뒤 수렁에 빠진 이라크, 이슬람국가(IS)의 준동과 난민 사태로 폐허가 된 시리아, 내전 상태인 예멘 등으로 급속히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란이 ‘시아파 맹주’가 아닌 ‘중동 전체의 맹주’로 발돋움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의 대중동 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이란은 1980년부터 8년간 전쟁을 벌였던 ‘적국’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했다. 이들은 이란의 지원을 등에 업고 IS 퇴출에 나섰다. 이란은 이라크 시아파 정치인 및 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도 막대한 돈을 뿌리고 있다. 이미 이라크 내 정치인과 종교인 중 상당수가 ‘친이란파’로 분류된다. 이란은 2015년부터 이어진 예멘 내전에서도 시아파 반군 후티를 지원하며 사우디 주도의 아랍 연합군 및 예멘 정부군과 대결 중이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자금줄이 이란 정부라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즉 ‘시아 초승달 지대’의 국가에 대한 지원은 혁명수비대가 담당한다. 단순한 자금 및 무기 지원을 넘어 이들 나라의 외교를 혁명수비대가 대리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이란이 주변국에 파병하거나 이들 나라의 민병대를 훈련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혁명수비대가 맡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란이 해당국의 군사 및 외교안보 정책에 깊숙하게 관여한다는 뜻이다.

632년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한 후 약 1400년간 이어진 시아파 대 수니파의 대립은 단순한 종교 갈등 수준을 넘어선다. 강력한 신정일치 및 공화국 형태의 이란과 세속분리 및 왕정을 택한 걸프만 수니파 국가는 서로가 서로의 체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아직도 전제군주들이 통치하는 걸프만의 수니파 왕실은 종교 지도자에게 최고 권력을 부여하고, 직접 선거로 국민 대리인을 선출하는 이란에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 미국이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 때보다 이란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배경에는 이런 수니파 아랍 동맹국들의 강력한 협력 움직임도 있었다. 사우디, UAE 등이 미국의 주요 무기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메흐란 캄라바 미 조지타운대 카타르캠퍼스 교수(외교학)는 “혁명수비대가 시리아, 이라크 등의 외교 업무를 관장한다는 사실은 주변국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선 이를 이란 핵 못지않게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 확장 프로젝트는 이미 정교한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미국으로선 아직 결과물(완전한 핵무기)이 완성되지 않은 이란 핵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다.

○ 이란 핵도 여전히 골치


이란은 북한과 달리 완성된 핵무기는 없다. 하지만 전반적인 핵 관련 시설과 기술 역량은 충분히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2015년 7월 이란과 서방의 핵 합의가 이뤄지기 전 이란은 무려 약 2만 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었다. 즉, 당시 핵 합의에 따라 핵무기 개발 작업을 중단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다시 이를 시도할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란은 올 들어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날로 강화되자 거듭 ‘핵 카드’를 거론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최근 이란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우라늄 생산을 기존보다 4배 늘리겠다” “핵 합의에 따라 그간 지켜온 우라늄 보유 한도를 지키지 않겠다”고 언급하는 이유다.

이란은 핵과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북한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 소식통들은 두 나라가 우라늄 농축, 원심 분리 기술 등 각각 강세를 보이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맞교환하며 서로의 핵 능력을 향상시켜 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 전쟁 가능성은 낮아


과연 미국과 이란은 전쟁을 벌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아무리 이란을 눈엣가시로 여겨도 직접적 충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선 이란과 주변국들의 군사 역량이 만만치 않다. 현재 이란군은 정규군 52만 명, 혁명수비대 12만5000명 등 총 64만 명이다. 오랜 제재로 첨단 무기 구입이 어려웠던 탓에 전투기, 항공모함 등의 최신 인프라는 미국보다 열세지만 자체 전투기 ‘코사르’를 개발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특히 이란은 중동 최고의 탄도미사일 강국이다. 사정거리가 약 2000km인 탄도미사일을 자체 개발 및 대량 생산했다. 이스라엘, 사우디, UAE 같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모두 사정권 안에 있다. 남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일부도 충분히 공격 가능하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물론이고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의 친이란 무장세력도 이란 편에 가담할 수 있다. 이들이 미군은 물론이고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미 동맹국에도 대규모 공격 또는 테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아랍권 국가의 외교관은 “이라크 전쟁에서도 고전했던 미국이 이라크보다 월등히 우세한 이란을 상대로 군사 조치를 취하진 않을 것”이라며 “사우디, UAE, 이스라엘 등도 말로는 ‘대이란 강경 대응’을 주장하지만 실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고 이란이 이에 대한 보복공격을 벌여 중동 전체가 화약고가 되는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이윤태 기자

#미국-이란 갈등#is 퇴출#중동 내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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