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이 직접 챙기는 스타트업… “佛은 누구나 창업하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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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佛 스타트업 전시회 ‘비바테크’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테크’에서 20대 스타트업 창업자 라파엘 프레스부르 씨(오른쪽)가 대기업 혁신 담당자들 앞에서 투자 유치를 위한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테크’에서 20대 스타트업 창업자 라파엘 프레스부르 씨(오른쪽)가 대기업 혁신 담당자들 앞에서 투자 유치를 위한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 “하루에도 수백 개의 인공지능(AI) 업체가 생겨난다. 당신 회사만의 강점이 있나?” 최근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린 정보기술(IT) 및 스타트업 국제전시회 비바테크. 무대 한쪽 세계적 대기업 혁신 담당자 7명 앞에 선 20대 스타트업 창업자 라파엘 프레스부르 씨는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프레스부르 씨는 5개월 전 파리에서 동업자 3명과 함께 AI 기술로 최적 데이터를 조합하는 데이터사이언스플랫폼 전문회사 ‘이포 애널리틱스’를 창업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그의 뒤로도 수많은 창업 꿈나무들이 대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한 발표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짧은 발표를 마치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 그는 기자에게 “처음이라 너무 긴장했다.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을 못 하겠다. 이번에는 투자자금 유치가 어려울 듯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

비바테크가 열린 베르사유 전시장 규모는 무려 5만6000m². 이포 애널리틱스 같은 스타트업 1만3000개, 관련 인물 12만4000명이 넓은 행사장을 발 디딜 틈 없이 꽉 채웠다. 프랑스가 과거 상징물 ‘늙은 수탉’이 아닌 ‘테크 강국’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창업 선후배, 대기업·스타트업 교류에 중점

현장에 마련된 ‘스타트업 스테이지’에서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과 이미 성공한 선배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간 질의응답도 한창이었다. 참가자들이 비바테크 앱을 통해 익명으로 질문하면 선배 CEO가 즉시 답해주는 형식이다.

한 참가자가 “창업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점이 무엇이냐. 인맥 네트워킹, 자본 유치, 정확한 시장분석 등이 다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에 공유 운송앱 ‘캡튼’을 이끄는 얀 아스코에 CEO는 “시장을 정확히 분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숫자 외 어떤 것도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처음에 같이 일할 사람을 어떻게 뽑아야 하나” “가족 및 지인과 동업해도 되나. 이들과 창업하는 일이 어떤 장단점이 있느냐”는 질문도 올라왔다.

구글 페이스북 IBM 삼성 로레알 LVMH 등 세계적 대기업도 부스를 차려놓고 스타트업과 상담했다. 쥘리 랑티 비바테크 공동 창립자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만남은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새로운 재능과 유연한 사고를 통해 디지털 전환 및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비바테크가 양자의 만남에 특별히 신경 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대통령도 뛰는 스타트업

행사장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등장했다. 그는 2017년 초 대선 당시 “프랑스를 누구나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취임 후 매년 비바테크를 찾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박람회를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와 맞먹는 행사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참석자들과 즉석에서 질의응답도 가졌다. 프랑스어뿐 아니라 영어로도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프랑스인보다 프랑스에 있는 프랑스인 인재들을 훨씬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다. 세금 개혁을 통해 프랑스 회사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낼 것”이라고 했다. 이어 “18개월간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비상장 기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이 많이 늘었다. 앞으로는 스타트업의 개수는 물론 그 규모를 키우는 데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행사 후 1주일이 지난 뒤엔 대통령 집무실 엘리제궁으로 IT기업 CEO 50여 명을 초대해 ‘테크 포 굿’ 콘퍼런스를 열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CEO, 사티아 나델라 MS CEO 등 내로라하는 경영자들이 나섰다. 그는 “공짜 점심은 없다. 당신들의 약속을 원한다”며 투자 유치를 독려했다.

○ 지자체도 함께 뛴다

전시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활발한 참여도 눈에 띄었다. 중부 오베르뉴론알프의 부스에는 지역 17개 스타트업이 참가해 제품을 설명했다. 디지털 소프트회사 카프튀르의 대표는 기자에게 “네트워킹 및 투자자 유치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 참가비도 모두 지자체가 대줬다”고 말했다.

제레미 몽타뉴 오베르뉴론알프 재무 매니저는 “모든 지자체가 스타트업 육성 체계를 갖췄다. 각 지역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맞는 분야를 집중 지원한다”며 “우리 지방에서는 AI를 포함해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를 포함한 일드프랑스 부스에서는 ‘페피트 프로그램’이 육성한 학생 기업가 6명의 발표가 진행됐다. 일드프랑스는 반년마다 학생 40명을 선발해 2017년 파리에 문을 연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 육성센터 ‘스테이션 F’에 입주시킨다. 대기업 및 선배 스타트업 CEO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사업화할 기회를 준다.

북부 루앙의 공학계열 그랑제콜 국립응용과학원(INSA)을 졸업한 도로테 베시에르 씨는 2017년 페피트 프로그램에 뽑혔다. 그는 지난해 2월 음식물 관리 앱 ‘세이브 잇(save eat)’을 개발했다. 보관 중인 음식물의 유통 기한, 효율적 보관 방법 및 조리법 등을 알려주는 친환경 앱으로 가입자가 2만 명이 넘는다. 베시에르 대표는 “프랑스에서 1인당 버리는 연간 음식물 폐기량이 79kg에 달한다. 이 앱으로 1명이 연간 20kg을 줄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 쑥쑥 늘어나는 스타트업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창업 수는 69만1000개로 2017년보다 17% 늘었다. 특히 종업원 10인 이하, 연매출 200만 유로 이하인 소위 ‘마이크로기업’은 30만8300개가 새로 등장했다. 한 해 전보다 28% 늘었다.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스타트업 성장률을 보이는 것은 집권 세력의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10년 넘게 꾸준하게 이어온 스타트업 육성 정책 덕분이다. 이는 2008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자영 기업가 지원 제도’로부터 이어졌다. 당시 세계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자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실업자, 학생, 퇴직자들에게 “매출이 없으면 사회보장분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외쳤다. 그는 세금 및 행정 절차 간소화 혜택을 제공하며 창업을 유도했다.

2014년 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는 이 제도를 마이크로 기업가 지원 제도로 확대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 세계 IT 분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특수 비자를 발급해 창업과 고용을 늘리는 ‘라 프렌치 테크’ 제도도 처음 선보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프렌치 테크 지부도 설립됐다.

마크롱 정부는 2017년 취임 때부터 마이크로기업의 매출 상한선을 두 배로 늘렸다. 혜택을 받는 기업 수를 늘리고 부가가치세도 면제해줬다. 특히 실업자가 창업하면 수익이 날 때까지 실업 수당을 계속 받을 수 있게 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는 약 100만 명이 넘는 마이크로 기업가가 있다. 10년 만의 성과다.

‘스테이션 F’도 프랑스 스타트업 붐의 상징이다. 이 행사는 ‘프랑스 스타트업 대부’ 그자비에 니엘 프리 창립자의 사비로 탄생했다. 현재 세계 78개국의 스타트업 1000여 개가 입주해 있다. 세계적 대기업도 이곳에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따르면 프랑스인 49%가 “마이크로기업의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35세 미만은 그 비율이 57%로 더 높았다. 미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BCG)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18∼64세 프랑스인의 15.7%가 “3년 내에 창업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유럽 평균(11.9%) 및 미국(11.7%)보다 높았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비바테크#창업#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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