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출신 해설가 김병현이 ‘건강한 맛’ 전도사 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5일 14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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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고장 광주(광역시)는 한식 음식점은 많은데 수제버거집은 거의 없더라고요. 저렴하고 제대로 된 맛집을 내고 싶었죠.”

최근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만난 메이저리거 출신 해설가 김병현(40)은 ‘건강한 맛’이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자신이 선수생활을 오래하지 못한 게 잘못된 식습관 때문이라고 봤기 때문이죠.

그는 최근 광주 동구 구성로에 자신의 모교 이름을 딴 수제버거 집 ‘광주제일햄버高’를 오픈했는데요. 이 역시 건강한 햄버거를 지향한다고 합니다. 8일 문을 연 첫날 준비한 수제버거 100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요즘도 하루 200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김병현이 건넨 수제버거집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신선함과 정성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 식재료만 써서 아이들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음식에서 나온다는 걸 그는 새삼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서울 종로구 효자로 거리에서 포즈를 취한 김병현. 그는 힘들었던 선수시절과 달리 편안한 미소를 되찾은 듯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일상을 즐기며 야구 해설위원 겸 요식업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안철민 기자
서울 종로구 효자로 거리에서 포즈를 취한 김병현. 그는 힘들었던 선수시절과 달리 편안한 미소를 되찾은 듯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일상을 즐기며 야구 해설위원 겸 요식업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안철민 기자

김병현은 기자와 만났을 때 한결 안정된 모습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은 다소 낯설어했지만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세 자녀와 행복한 가정을 이뤘기에 과거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던 현역 시절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건강한 음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어릴 때(20세) 미국에 가서 많은 음식을 먹어봤어요. 저렴한 햄버거부터 비싼 고기 집까지 찾아다녔죠. 인스턴트 음식은 금방 질리더군요. 조미료 등 첨가물이 들어있어 건강에도 좋지 않았고 저 역시 선수 생활에 악영향을 미쳤죠. 그러던 중. 지난해 우연히 경기 양수리에서 정말 맛있는 수제버거를 발견했어요. 김성규 셰프(전 동아일보 기자)가 만든 수제버거였죠. 천연 식재료를 사용한 고기 패티에 신선한 빵을 곁들여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그 가게가 조만간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수제버거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았죠.”

김병현은 요즘 서울과 광주를 오가고 있습니다. 광주 가게 주방을 잠시 맡고 있는 김 셰프로부터 패티와 빵 조리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는데요.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장에는 햄버거가 필수다. 광주 구장에도 수제버거 입점을 구상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2004년 초밥집을 열어 성공을 거뒀습니다. 지금은 지인이 2곳을 운영하고 있죠. 김병현은 당시 “내가 원하던 공을 던질 수 없어 선수생활을 그만둘까 고민하던 중 초밥집을 연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타이 음식점은 용산구 해방촌의 작은 식당에서 천연재료를 쓰는 태국 출신 주방장을 만나 함께 동업을 하게 됐다고 하네요. 그는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맛을 내느라 수익이 많지는 않다. 큰 돈을 벌려고 했으면 소고기 집을 했을 것이다”라며 웃었습니다. 돈 때문에 요식업을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였죠.

김병현은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99년 1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에 입단한 걸 약간은 후회하는 듯 했습니다.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모인다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강속구를 뿌리며 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만큼 어린 나이에 외로움, 언어장벽 등이 컸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김병현은 고향팀 KIA에 대한 미안함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친정에서 멋진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었는데,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죠. 그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탓에 심신이 흐릿해졌다고 했습니다.

“프로 데뷔 초기에는 타자가 가까이에서 보였고 공에 대한 집중력도 강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이 떨어졌어요. ‘이게 내 공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어요. 나쁜 음식이 몸을 망가트린 셈이었죠. KIA 시절 임창용 형과 거울에 나란히 선 적이 있었는데, 창용 형은 예나 지금이나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반면 나는 너무 둔해 보였죠. 과거에 나도 창용 형 같은 몸이었는데….”

김병현은 2001년 애리조나, 2004년 보스턴에서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고 애리조나 시절인 2002년 8승 3패 36세이브에 평균자책 2.04로 최고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냈습니다. 일본과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지난해 호주 겨울 리그에서 그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호주에서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0.93을 기록했을 때 공 스피드는 시속 140km에 머물렀지만 신인이었던 내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었어요. 그걸로 만족합니다.”

김병현은 공식 은퇴식은 하지 않았지만 이제 현역으로 뛰는 건 포기한 듯 했습니다. 대신 가족과 더 큰 행복을 찾고 싶다고 했죠.

마운드는 떠났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류현진을 두고 “스피드 보다 완급조절이 뛰어나 나이가 들어서도 선발투수로 오래 활약할 투수다.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하다”라며 “(운동 잘하니) 잘생겨 보인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고향팀에서 투수 후배를 키워보고 싶다는 김병현. 그는 “야구나 햄버거나 최선을 다해야 진정한 맛이 우러난다”고 했습니다. 야구가 잘 안될 때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없이 공을 다시 던졌던 그였기에 야구장에서 다시 만날 날이 곧 올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불혹(不惑·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 나이)이라 부르는 마흔 살에 제2의 인생을 달리고 있는 김병현이 한결 듬직해 보였습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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