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사고’ 예비신부 유가족 “30년만에 나타난 친모 괘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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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22일 0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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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삶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따라 상속권 인정 돼야”
“조현병 환자 체계적인 관리·상속권 개정 반드시 필요”

조현병 환자가 몰고 역주행하던 화물차에 부딪혀 생을 마감한 예비신부의 영정사진. 예비신부의 어깨 위로 새하얀 웨딩 드레스가 반짝인다. (유가족 제공) /© 뉴스1
조현병 환자가 몰고 역주행하던 화물차에 부딪혀 생을 마감한 예비신부의 영정사진. 예비신부의 어깨 위로 새하얀 웨딩 드레스가 반짝인다. (유가족 제공) /© 뉴스1

조현병 환자가 몰던 역주행 화물차에 목숨을 잃은 예비신부.

그녀가 참변을 당하지 않았다면 22일 오늘은 생애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백년가약을 맺고 축복을 받았을 날이다.

22일 낮 12시30분. 예비신부 최씨(30)가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손수 전달하면서 손꼽아 기다렸던 결혼식, 바로 그날이다.

최씨가 전한 청첩장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혼례식을 치르는 날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라’ 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가 적혀 있었다.

최씨의 유가족들은 사망보험금을 받으러 30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치솟다가도 이미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예비신부가 떠올라 그저 눈물만 흘린다.

예비신부의 작은언니 박모씨(39·오른쪽)와 형부 황모씨(35·왼쪽)가 21일 오후 <뉴스1>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박세진 기자
예비신부의 작은언니 박모씨(39·오른쪽)와 형부 황모씨(35·왼쪽)가 21일 오후 <뉴스1>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박세진 기자

유가족들은 21일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망보험금에 대해 논의하자고 이야기하더니 그 이후 정작 연락을 피하던 친모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자 ‘청원 올리느라 바빴겠네’라고 쏘아붙이듯 전화가 왔다”고 했다.

또 “친모는 그 아이의 직장에 찾아가 퇴직금이 얼마인지 알아보고 필요한 서류를 물어보고 사고가 났던 대전의 모 병원까지 찾아가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아갔다”며 “친모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자고 이야기 했는데도 현재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취재진과 만난 유가족들은 막냇동생의 앞날이 얼마나 밝았는지 그리고 가족들에게 얼마나 애틋하고도 소중한 존재였는지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을 놓고 눈물로 설명했다.

또 조현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 감독과 상속권 개정을 촉구하면서 또다른 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지 않기를 염원했다.

한편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조현병 역주행사고 예비신부의 언니입니다. 자격없는 친권은 박탈해주세요’ 제목으로 올린 예비신부 최씨의 작은언니 박모씨(39)의 글은 현재까지 4만 6800여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수석이나 각 부처 장관은 청원인원이 한 달동안 20만명을 넘길 경우 그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한다.

다음은 유가족이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예비신부 최씨의 작은 언니 박씨와 형부 황모씨(35)와의 일문일답.

―예비신부가 한 살무렵부터 고모집에 맡겨졌다고 했는데, 어떻게 함께 살게 됐나?

▶막냇동생(예비신부)이 어릴 때 친부모가 이혼한 뒤부터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다. 어머니는 외삼촌이 이혼하자 ‘너는 네 삶을 살아라.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잘 키워보겠다’면서 동생을 데려왔다. 동생이 5살때 외삼촌이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쭉 함께 살았다. 동생은 가족간에 싸우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부모님이 한 때 이혼하려고 했을 때도 엄마(고모) 손을 꼭 붙잡고 ‘엄마, 안된다. 이혼만큼은 절대로 안된다’라면서 설득했다. 가족 간에도 싸울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하지마요’ 라면서 경고를 주는 것도 동생이었다. ‘싸우고 티내는 거 보기 싫다’고 말하면 가족들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예비신부 큰언니의 중학교 졸업식 당시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예비신부가 노란색 저고리 옷을 입고 맨 앞 중앙에 서 있다.(유가족 제공) /© 뉴스1
예비신부 큰언니의 중학교 졸업식 당시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예비신부가 노란색 저고리 옷을 입고 맨 앞 중앙에 서 있다.(유가족 제공) /© 뉴스1

―어떤 아이였나.

▶굉장히 밝고 쾌활한 아이였다. 웃을 때면 뒤로 넘어가면서 깔깔 신나게 웃는 그런 아이.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때도 친구들을 여럿 데려와 집에 재웠다. 사실 좁고 허름한 우리집이었는데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회사에서도 밝은 성격에 맡은 업무도 잘해내서 서울 본사에 있는 연구소 발령자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사장이 참석하는 중요한 해외 출장이 있을 때면 항상 동생이 따라갔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다섯 명과 비에 흠뻑 젖어 집에 왔는데 아빠(고모부)가 친구들 교복까지 모두 세탁기에 돌리고 손수 다림질까지 해서 입혀보낸 일을 친구들한테 자주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엄마(고모), 아빠(고모부)의 딸로 태어날 거야’라고 말했단다.

이런 것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는데 막냇동생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서 와서 말해준 덕에 알았다.(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버지는 더욱 가슴아파 하셨다.

―가족들에게는 어떤 존재였나.

▶복덩이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이 잘 안모였다. 한 단계 올라서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다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서 형편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우린 그게 복덩이같은 막냇동생(예비신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에게 줄 혼수 선물로 가장 큰 TV,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까지 전자제품 예약을 다 해놓은 터였다. 동생이 팔짝팔짝 뛰면서 엄청 좋아했다. ‘혼수로 천만원을 해줘도 아깝지 않다. 너는 복덩이니까’ 그런 말을 나누고 시집 보내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는데 다음날 사고가 났다. 그렇게 동생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예비신부가 작은언니, 큰오빠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유가족 제공) /© 뉴스1
예비신부가 작은언니, 큰오빠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유가족 제공) /© 뉴스1

―언니와 오빠들은 공장도 다니면서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막냇동생은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어려운 형편에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나?

▶사실 우리는 모두 유치원을 못나왔다.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냇동생은 유치원을 다녔다. 그 정도로 가족들은 동생의 마음에 깊이 패인 것들을 메꾸어주려고 했다. 단어 하나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동생이 상처받을까봐 온 가족이 애를 많이 썼다. 나와 동생은 9살 차이가 난다. 당시 집안에서 학업을 하는 사람은 동생 뿐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직장을 다니던 나, 언니 오빠가 힘을 합해 뒷바라지를 했다. 주말에 부산에 올 때면 동생이 좋아하는 게를 사다놓고 온가족이 모여 기다렸다. 명절 때 우리끼리 둘러앉아 밤새 화투놀이를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책방안이 거론되던 와중에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인데.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20분동안 하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차량 통제를 바로 했어야 했다. 진입 차량 운전자에게 사고 위험을 미리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목숨을 걸고 역주행 화물차를 뒤따라간 경찰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역주행 차를 뒤따라가는 위험을 무릅쓸 것이 아니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안전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입원과 약물 복용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도, 역주행 사고에 대한 안전 지침도 마련되어야 한다.

―사망보험금에 대한 상속권에 대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10년, 20년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면 친모는 아이 없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막냇동생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않아 했다. 우리 동생이 사고로 다쳤더라도 찾아왔을까. 절대로 안 왔을 것이다. 사망보험금을 타러 온 것이지 동생을 보살피러 온 것이 아니다. 상속권은 그 사람의 삶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지 낳기만 했다고 상속이 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사람의 삶에 대한 보상이 보험금인데 어떻게 기여하지 않은 사람이 권리가 있다는 건가.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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