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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老거장의 마지막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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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老거장의 마지막 5년

김민 기자 입력 2019-06-20 03:00수정 2019-06-20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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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미술관 박생광 회고전
평생 수묵화 그리다 日서 돌아와 ‘무속’-‘인물 시리즈’ 등 채색화 전념
암투병 중에도 의연히 畵魂 불지펴
박생광 화백의 1981년 작품 ‘무속’. 박 화백은 77세이던 1980년 무렵부터 무속과 역사인물화에 대한 관심을 집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른쪽 아래 적힌 ‘그대로’는 박 화백의 한국식 호이며 인생 그대로, 자연 그대로, 예술 그대로 본연의 삶을 체험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대구미술관 제공
故 박생광 화백
화가 박생광(1904∼1985)은 말년에 한국적인 채색화로 화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평생 수묵화를 그려온 작가는 눈을 감기 직전 5년여 동안 돌연 한국의 오방색과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을 쏟아냈다. 외부와의 교류도 끊고 작업했던 그의 곁을 지킨 이는 아들 박정 씨(74)다. 현재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생광전’(10월 20일까지)은 15년 만의 회고전으로 회화와 드로잉 등 162점으로 구성됐다. 박 씨를 17일 만나 박 화백의 마지막에 대해 인터뷰했다. 이를 박 씨의 육성으로 재구성했다.

일본에 머무르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한국에 오셨다. 여든이 다 된 아버지가 다시 일본으로 가려 하자 가족이 붙잡았다. 며칠을 생각하던 아버지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가지 말까” 하더니, 일본의 그림을 가져오라 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그림은 8호 캔버스에 작게 그린 ‘무속’이었다. 이는 후에 대작으로 그려지고, 1985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의 ‘르살롱-85: 한국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예술전’ 포스터가 됐다. 당시 아버지의 그림을 본 후배 작가들은 “지금 그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왜 이상한 걸 시작하느냐”고 했다. 아버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딴생각이 있어 그렇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내게 “게네는 모른다. 40대부터 우리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박생광 화백은 1978년부터 민족적 소재를 찾기 위해 역사학자에게 자문하고 한국사 서적을 탐독했다. 왼쪽부터 ‘토함산 해돋이’(1980년대)와 ‘해질녘’(1979년). 대구미술관 제공
단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담은 ‘역사 인물 시리즈’는 호암미술관에서 가져온 피카소의 ‘게르니카’ 포스터에서 시작했다. 아버지는 포스터를 보고 “역사를 그려야겠다”고 하셨다. 당시 후두암을 앓고 계셨는데 의사가 1년 혹은 2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아버지에게는 이를 전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계획이 있으니 빨리 말해줘야 한다”고 독촉하셔서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대작 200점 시리즈를 계획하셨다며 작업실 문 앞에 ‘출입금지’를 써 붙이고 작업에 몰두하셨다. 하지만 계획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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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행운이 찾아왔다. 동아시아 기획전을 위해 1984년 10월 한국에 온 아르노 오트리브 프랑스미술가협회장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우연히 아버지 작품을 봤다. 오트리브는 “이 젊은 작가는 누구냐”고 물었다. “젊은 작가가 아닌 노(老)대가”라는 답변을 듣더니 당장 작업실로 가자고 했단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 겸 작업실로 온 오트리브는 “한국은 일제강점기도 겪었으니 게르니카 같은 작품이 나올 법한데 왜 풍경에만 집착하나 싶었다. 이게 바로 세계적인 그림이다”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파리 전시에 초청했다.

오트리브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버지는 대표작인 ‘전봉준’과 ‘역사의 줄기’를 제작하셨다. 차기작으로 안중근을 그려야겠다며 나를 데리고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가서 사진을 찍게 하고 스케치도 해보셨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1980년을 전후로 시작한 아버지의 불꽃같은 마지막 작업은 1985년 7월 막을 내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박생광#박생광 회고전#대구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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