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14일 고(故) 이희호 여사를 떠나보내며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다”라며 “남은 우리는 여사님의 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7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이 여사 영결예배 조사(弔詞)를 통해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리는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셨으나 보통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으셨다”라며 “대학시절 여성인권에 눈뜨셨고, 유학을 마치자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드셨다. 평탄하기 어려운 선구자의 길을 걸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여사님은 아이 둘을 가진 홀아버지와 결혼하셨고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 끌려가셨다”라며 “그것은 길고도 참혹한 고난의 서곡이었다”고 언급했다.
이 총리는 “남편은 바다에 수장될 위험과 사형선고 등 다섯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겪으셨다. 가택연금과 해외 망명도 이어졌다”라며 “그러나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으셨다. 남편이 감옥에 계시거나 해외 망명 중이실 때도, 여사님은 남편에게 편안함을 권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쟁하라고 독려하셨다”라며 “훗날 김대중 대통령님이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고백하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 여사가 강인했고, 동시에 온유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동교동에서 숙직하는 비서들의 이부자리를 직접 챙기셨다. 함께 싸우다 감옥에 끌려간 대학생들에게는 생활비를 쪼개 영치금을 넣어주셨다”라며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죄는 미워하셨지만, 사람은 결코 미워하지 않으셨다. 여사님의 그런 강인함과 온유함은 깊은 신앙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안다”고 밝혔다.
이어 “여사님이 믿으신 하나님은 기나긴 시련을 주셨지만 끝내는 찬란한 영광으로 되돌려 주셨다”라며 “남편은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셨고 분단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셨다. 우리 국민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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