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홍콩 100만 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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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상하이, 1950년대 홍콩은 중국 현대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들이다. 1920년대 상하이는 당시 ‘동양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국제적이어서 대한민국 최초의 임시정부도 그 속에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홍콩을 만든 것은 1950년대 공산화된 중국을 피해 온 난민들이다. 그들이 홍콩의 개방성 속에 어우러져 서구에 필적할 아시아의 첫 대중문화의 시대를 열었다.

▷홍콩은 예나 지금이나 관광의 홍콩이지 정치의 홍콩은 아니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로는 정치의 홍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은 중국에 속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홍콩의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만 해도 정부에 의해 임명되지 않고 선거로 선출된다. 그러나 주민들의 직접 선거가 아니라 대의원의 간접 선거로 선출되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홍콩 행정장관이었던 둥젠화(董建華), 도널드 창, 렁춘잉(梁振英)과 현 캐리 람 장관은 모두 강경 친중파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주파 후보의 지지도가 높아 주민의 의사와 간선제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2014년 홍콩 주민들은 행정장관의 직선을 요구하며 50만 명이 참가한 ‘우산 혁명’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정부는 마지못해 2017년 직선제에 동의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직선제가 중국 인민대표회의가 사전에 뽑은 2, 3명의 후보를 놓고 직접 투표하는 무늬만 직선제여서 홍콩 주민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9일 홍콩에서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중국과의 범죄인 인도 협정 개정 반대 시위에 100만 명이 운집했다. 시위대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것을 우려했다. 시위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켜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에서도 연대 지지 집회가 열렸다.

▷이번 시위는 닷새 지연돼 주말에 맞춰 열린 6·4 톈안먼 사태 30주년 추모 시위라고도 볼 수 있다. 홍콩이 정치 개혁을 요구하다가 희생된 6·4 톈안먼 시위대를 끊임없이 추모하는 것은 중국의 정치 개혁 없이 홍콩의 정치 개혁도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산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부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는 것을 목격한 지금, 그것은 단순한 추모 이상이다. 지금의 홍콩 주민들에게 30년 전 톈안먼 시위대의 요구는, 그것 없이는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고 치솟는 집값 등 민생 문제도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절실한 현재진행형의 요구가 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상하이#홍콩#톈안먼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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