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토론 활동이 입시에 불이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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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독후감-동아리 활동 기록, 생활기록부서 지우는 학생 늘어
대학 “학업능력이 가장 중요… 개인 가치관은 평가 안 한다”

“선생님,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기록 지워주실 수 있나요?”

여성인권을 다룬 각종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학교에서도 여성인권을 주제로 한 각종 토론, 독서, 동아리 등 활동이 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활동을 했던 고등학생들이 ‘페미니즘 활동에 대한 오해로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학생부에서 삭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A고교에 근무하는 한 사회교사는 “토론수업 중 젠더 불평등에 대해서 설명을 잘한 학생이 있어 해당 내용을 학생부에 기록했지만, 삭제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 등 페미니즘과 관련된 독후감을 썼던 학생부 기록을 두고 고민하는 학생도 있다. 혹시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입학사정관이 이 기록을 본다면 정성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 탓이다.

비단 ‘친(親)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내는 활동뿐 아니라 ‘반(反)페미니즘 성향’의 활동들을 자기검열하는 학생들도 있다. 회원수 266만4178명에 이르는 대형 입시 커뮤니티 ‘수능만점시험지 휘날리며’에 지난달 글을 올린 한 학생은 “토론시간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해도 되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편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담길 수 있고 남성 역차별 소지도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며 “학생부에 이 내용이 담겼는데 입시에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는 ‘여성혐오’ ‘남성혐오’ 등 젠더 이슈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일선 학교에까지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본래 ‘페미니즘’은 여성인권 신장 운동을 의미하지만, 최근 한국사회에선 성별 간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의 입학사정관들은 ‘페미니즘’과 관련해 학생이 해 온 활동은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준민 서울대 입학사정관은 “개인의 가치관은 평가요소가 아니고 ‘학업능력’을 제일 중요하게 평가한다”며 “단언컨대 지원자들을 특정 성향에 따라 걸러내는 대학은 없다”고 말했다.

괜한 걱정이 앞서 지난 학기 학생부 기록을 뒤늦게 수정하는 것은 절차가 복잡할 뿐 아니라 입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계법령에 따르면 학생부는 원칙적으로 학년이 마감된 뒤 수정해선 안 된다. 학생이 재학 중인 경우에 한해 명확한 사실관계의 오류가 있을 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고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 정정에 대한 심의와 결정을 한다. 임진택 경희대 수석입학사정관은 “삭제를 했다는 사실도 기록에 남고 오히려 이 기록을 보고 입학사정관들은 ‘왜 삭제를 했을까’ 궁금해할 뿐이다”라며 “기록을 삭제함으로써 발생하는 이득은 없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강동웅 기자
#페미니즘 동아리#여성인권#젠더 불평등#학교생활기록부#기록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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