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가 후진국이라서? 비난보다는 감사와 격려를[광화문에서/동정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헝가리가 ‘후진국’이라서 실종자 수색 및 선체 인양이 늦어진다고 생각하세요?”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한 지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사고 현장에서 만난 헝가리 기자가 물었다.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엔 섭섭함이 가득했다.

한국에 거주 중인 기고가 유지니아 S 리아 씨가 헝가리 ATV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이 지지부진한 헝가리 당국의 실종자 수색 및 선체 인양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헝가리가 ‘가난한 동유럽 국가’임을 인지하게 됐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기자는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부터 지금까지 부다페스트에 일주일 넘게 머물고 있다. 생면부지 타인인 기자에게 다가와 서툰 영어로 위로하는 사람, 가슴을 두드리는 제스처로 애도하는 헝가리인을 수없이 만났다. 음료수 캔 박스를 들고 다니며 한국인에게만 나눠주는 이도 있었다. 동료 기자들은 “한국 기자라고 했더니 택시 운전사가 돈을 받지 않았다” “트램 티켓 사는 방법을 물었더니 한 시민이 10회권 탑승 티켓을 줬다”고도 했다. 사고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던 선장들을 취재차 만났을 때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눴다”며 잘 응하지 않았다. 사람을 7명밖에 구하지 못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한 선장이 “이 이야기는 하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났을 때 허블레아니호 침몰을 방치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당시 8∼10척의 배가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모든 선장이 즉각 라디오로 사고 소식을 알리고 서로 구하라고 외쳤다.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 20대 여성 선장은 사고 당시 즉각 배를 멈추고 튜브를 강에 던져 한국 여성 두 명을 끌어올렸고, 다른 선원 세 명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한국인 한 명이 물길에 휩쓸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오늘(5일)도 사고 현장에서는 한국과 헝가리 잠수부들의 실종자 수색이 한창이다. 헝가리 잠수부 대부분은 민간 자원봉사자들이다. 사고 다음 날부터 불어난 강물, 빠른 유속, 시계거리 ‘제로(0)’나 다름없는 뿌연 물속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있다. 하버리안 잠수팀은 매일 오전 3시 무려 200km 떨어진 버여 지방에서 현장으로 출근한다. 헝가리 언론에 따르면 각종 구조작업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만 621명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이런 헝가리 측 노력과 헌신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 헝가리 언론 및 정부 관계자들도 “한국 여론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 정부의 현지 브리핑도 우리가 헝가리 쪽에 지원 및 편의를 요청했다는 내용만 가득하다.

실종자를 수색하고 가족들을 돌보기 위한 지원 요청은 필요하다. 참사를 낸 선장의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 일인 듯 두 팔 벌려 도와주는 헝가리인에 대한 감사와 격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 잠수부들을 ‘영웅’이라 칭송한 헝가리 대테러센터장처럼 우리도 이름 모를 헝가리 영웅들을 기억해야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헝가리#실종자 수색#헝가리 영웅들#민간 자원봉사자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