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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용사들의 지워진 이름… 유공자 묘비 찾아 헤매는 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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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용사들의 지워진 이름… 유공자 묘비 찾아 헤매는 현충일

한성희 기자 입력 2019-06-06 03:00수정 2019-06-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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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한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진 이름과 계급 등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지워져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비석에 이름이 안 보여서 우리 오빠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조모 씨(58·여)는 오빠의 묘비를 찾지 못해 묘역 이곳저곳을 10분 넘게 헤맸다. 경북 문경시에 사는 조 씨는 현충일을 앞두고 3년 만에 오빠를 찾아왔다. 조 씨는 “묘비에 새겨진 글씨가 흐릿해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날 기자가 서울현충원 묘역을 둘러보니 묘비 앞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과 계급이 흐릿해져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절반이 넘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으면 유족들은 넓은 묘역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축구장 200여 개 넓이(144만 m²)인 서울현충원에는 5만4500여 개의 묘비가 있다. 현충원 관계자는 “1955년 개원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화강암 비석에 글씨를 새긴 음각 부분이 비바람에 노출되면서 (글씨를) 알아보기가 힘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작구 중장년 일자리 지원 기관인 ‘동작50플러스센터’의 일자리사업 참여자가 뙤약볕 아래서 묘비의 지워진 이름 등을 먹물로 칠해 넣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현충원은 2017년 9월 비석의 음각 부분을 먹물로 덧칠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비석의 패어 있는 곳에 먹물을 칠해 글씨가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 5월까지 전체 묘비의 47%인 2만5700여 개 묘비에 덧칠을 했다. 하지만 먹물은 빗물에 잘 씻겨 1, 2년만 지나도 글씨가 다시 흐릿해진다. 그러면 또 덧칠을 해야 한다. 실제로 2017년 먹물을 칠했던 비석 대부분은 이름과 계급이 다시 흐릿해진 상태다. 작업 인력도 부족하다. 한 명이 비석 1개를 칠하는 데는 적어도 20분이 걸린다. 하루 10시간을 꼬박 매달려도 한 사람이 칠할 수 있는 비석은 30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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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예산은 서울현충원이나 상급 기관인 국방부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서울시가 부담하고 있다. 동작구 산하기관인 ‘동작50플러스센터’가 중장년 일자리사업 예산을 신청했는데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였다. 센터는 이 예산으로 2017년 9월부터 먹물 덧칠 작업자들의 인건비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청년일자리사업을 확대하면서 중장년 일자리사업 예산을 줄여 2017년 20명으로 출발했던 작업 인력이 지난해 18명, 올해는 10명으로 줄었다. 작업 인력들은 시간당 9200원을 받고 먹물을 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충원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국방부는 현충원 운영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충원 관계자는 “근본적인 대안은 묘비를 교체하는 것이다. 시설관리 예산 일부로 교체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데, 전면 교체하려면 국방부에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에 관련 예산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묘비 관리 책임이 현충원에 있다며 한 발 빼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서울현충원이 국방부 소속이지만, 묘역 관리와 시설 운영 책임은 현충원에 있다”며 “현충원이 관련 예산을 요청하면 담당 부서에서 검토해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서울현충원은 유족이 비석 교체를 요구한 경우에만 현장조사를 거쳐 비석을 바꿔주고 있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현충원#유공자 묘비#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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