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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상하이서 불어온 재즈열풍… 조선의 청춘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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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상하이서 불어온 재즈열풍… 조선의 청춘을 사로잡다

상하이=유원모 기자 입력 2019-06-05 03:00수정 2019-06-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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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맞아 한중 학술회의 ‘코리아재즈밴드’가 한국 재즈 시초
1928년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 악단인 ‘코리아재즈밴드’. 2년여간 전국을 누비며 순회공연을 펼치는 등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에게 재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DB
‘상하이 릴’(1935년), ‘상하이 블루스’(1937년)….

1930년대 경성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재즈 음악에서는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화려함과 낭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상하이’가 등장한다는 것. “어여쁜 엔젤들의 윙크가 그리워라 상하이/상하이는 청춘의 락원∼” 1935년 발표된 ‘꽃피는 상하이’의 가사 속에는 당대 젊은이들의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은 왜 상하이에 열광했을까.

1928년 1월 조선축구단의 상하이 원정 경기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호남의 대부호였던 백명곤이 이끌던 조선축구단은 영국 육군 축구팀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축구 경기를 위해 떠났지만 백만장자이자 화려한 사치를 즐기던 백명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재즈’였다. 상하이의 조계 지역을 중심으로 재즈 클럽이 크게 번성하면서 미국, 필리핀,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던 때였다.


백명곤은 재즈 악보와 색소폰, 피아노 등 악기를 대거 구입해 귀국한다. 이후 당대 최고 음악가들을 한 명씩 불러 모아 색소폰에 백명곤, 트럼펫 한욱동, 피아노 홍난파, 드럼 이상준, 노래 이인선 등으로 구성된 8인조 재즈 악단을 결성한다. 한국 최초의 재즈 밴드인 ‘코리아재즈밴드’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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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YMCA 회관에서 첫 공연을 연 밴드의 인기는 대단했다. 세련된 음색에 젊은이들은 매료됐고, 전국을 순회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1929년 9월호 개벽 잡지에는 “코리아재즈밴드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젊은 피에 끓는 남녀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한 가지 즐김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도록 뛰고 놀아버릴 뿐”이라며 재즈 열풍에 빠진 당대의 세태를 비판하는 지식인이 등장할 정도였다.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한중 공동 국제학술대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상하이’에서는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추적한 이색적인 연구가 공개됐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의 ‘중국 상하이와 한국 근대 대중음악의 몇 가지 국면’이다. 장 교수는 “1930년대까지 재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적군인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음악을 금지하면서 명맥이 끊기고, 잊힌 역사가 됐다”며 “1950년대를 ‘재즈 1세대’로 규정하고 있는데 1920, 30년대에 이미 재즈 열풍이 불었다는 점에서 당시를 ‘재즈 0세대’로 부를 만하다”고 했다.

한편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푸단대 한국연구센터가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의 공동 항일투쟁 역사가 집중 조명됐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최근 인도를 방문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인도의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끌던 수바스 찬드라 보스(1897∼1945)의 후손을 직접 찾아가 인도의 민심을 얻기도 했다”며 “한국과 중국은 함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공통의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항일’을 매개로 한 공동 역사 연구는 경색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상하이=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코리아재즈밴드#한국 재즈 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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