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박사 “물고문으로 실신한 웜비어 목격… 삭간몰서 생화학무기도 개발”[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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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개월간 北억류’ 경험담 책으로 펴낸 김동철 박사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김동철 박사가 “북한 주민의 비참한 실상과 핵·생화학 무기 개발 야욕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자신의 북한 체험을 정리한 책 ‘경계인’의 가제본 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김동철 박사가 “북한 주민의 비참한 실상과 핵·생화학 무기 개발 야욕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자신의 북한 체험을 정리한 책 ‘경계인’의 가제본 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구자룡 논설위원
구자룡 논설위원
《“2015년 10월 나선특구에서 체포돼 11월 평양으로 압송된 뒤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였습니다. 2016년 초에 건장한 미국인 청년이 조사받는 것을 목격했어요. 내가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올 때 다른 취조실에서 영어로 소리를 지르고 어떨 때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나기도 했지요.”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석방한 한국 출신 미국 시민권자 김동철 박사를 지난주 인터뷰했다. 김 박사는 북한에 억류돼 있을 때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물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 박사는 북한 경험담을 담은 책 ‘경계인(Border Rider)’을 6일 출간한다.》
 
김동철 박사가 2016년 3월 25일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판결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김동철 박사가 2016년 3월 25일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판결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어느 날 복도에서 그 미국인 청년이 머리와 얼굴에 물이 흠뻑 젖어서 수사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취조실에서 질질 끌려가는데 거의 실신 상태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어요. 나도 물고문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청년도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 뻔히 알 수가 있었지요.”

김 박사는 “평양 조사에서 받은 고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물고문이었다. 취조실내 물이 가득 채워진 욕조 앞에 손을 뒤로 묶은 채 무릎을 꿇게 하고 머리를 욕조 안에 밀어 넣으면 1분도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물고문으로 기진맥진해 복도를 걷다가 2차례나 실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웜비어가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선전 구호가 적힌 포스터 한 장을 떼 온 죄(국가재산 절취죄)와 김정일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돌돌 말아 권위훼손죄가 추가돼 강제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은 것을 석방된 뒤에야 알게 됐다. 미국의 명문 주립대인 버지니아대 학생이던 웜비어는 북한 여행 중 억류돼 15년형을 선고받은 뒤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왔으나 6일 만에 사망했다.

北, 치료비 명목 1억여원 뜯어가

김 박사는 웜비어를 석방할 때 북한이 치료비 명목으로 20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북한 당국은 병원비와 치료비 명목으로 내 아내에게서 인민폐 70만 위안(약 1억2000만 원)을 뜯어갔다”고 했다.

김 박사는 나선특구에 두만강 호텔을 지어 운영하는 등 17년가량 대북 사업을 하다 북한 당국에 체포돼 국가전복죄 등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 지난해 5월 9일 풀려났다. 김 박사는 전현직 군인이나 전문가들을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하면서까지 핵과 미사일 관련 민감한 정보를 수집한 동기에 대해 저서 ‘경계인’에서 “인권 사각지대에서 폐쇄된 북한 주민들의 노예에 가까운 비참한 생활의 해방에 일조하기 위해 외부 세계에 진실된 실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년가량 되었을 때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협조를 요청했다. ‘비밀 첩보원’이 되는 위험 부담도 있지만 거절하지 않은 것은 그런 소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北실상 알리려 정보기관에 협조

▽“북한 삭간몰에서 생화학무기 개발”=김 박사는 북한이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평안남도 평성 인근에는 핵 개발 관련 지하 연구소가 있으며 미사일 기지로 알려진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에서는 생화학무기 등 비대칭 무기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만난 김책공대 핵물리학 교수직을 퇴직한 한 핵 과학자가 자신이 평성 근처 지하 연구소에서 핵 물질 제조 과정을 기하학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10여 년 해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과학자는 핵 제조와 미사일 개발에 필수 물질이라며 옛소련을 지칭하는 ‘CCCP’가 선명히 새겨진 순도 99.999%의 네모난 농축 아연 덩어리도 가지고 나왔는데, 이 아연괴는 김 박사가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서 ‘CCCP’ 새긴 아연괴 구입

삭간몰은 2016년 3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곳이다. 김 박사가 평양에서 만난 삭간몰 소재 한 연구소의 경비부대 군인은 “삭간몰에서 비대칭 무기들이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 박사는 주장했다. 김 박사는 삭간몰이 미사일 발사 기지에 그치지 않고 비대칭무기들이 준비되고 있으며 북한 전역에 있는 방공호 중에는 비대칭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가 있는 곳도 있다고 주장했다. 평성 부근에도 명칭은 화학공장, 비료공장이지만 VX와 사린가스 같은 맹독성 생화학무기와 탄저균 같은 생물무기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는 것.

▽강제노동교화소 생활=김 박사는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평양 외곽의 산악지대 강제노동교화소에서 복역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땅파기 등 각종 노동을 했으며 하루 세끼 식사는 시큼시큼한 냄새가 나는 갈색의 쌀밥과 짠 된장국, 소금에 절인 무, 말린 짠지 3조각이 전부인 생활이 수용기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고 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야외작업을 할 때 산열매는 물론 생감자도 몰래 씹어 먹다 몇 차례 설사를 했고, 굼벵이도 산 채로 잡아서 먹었다고 했다. 산비탈에서 작업하다 엄지손가락이 부러져 자유롭게 펴지지 않는다며 인터뷰 도중 굽어 있는 부분을 보여줬다.

그는 지옥 같은 삶에서 죽고 싶을 때마다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벌레야, 벌레야”였다고 했다. 벌레처럼이라도 살아서 생명을 지탱하라는 말로 들렸다며 비가 많이 오는 날 저녁에 감시원이 듣지 못할 때 목 놓아 울기도 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2017년 여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난 것이 수감 중 처음이자 마지막 면회였다고 말했다. 조셉 윤 대표는 사회보장카드 번호 등을 통해 김 박사가 미국 시민권자임을 확인하고 무슨 범죄로 체포돼 재판을 받았는지, 형량, 어디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등을 물었다.

김동철 박사가 2018년 5월 9일 북한에서 석방돼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동철 박사가 2018년 5월 9일 북한에서 석방돼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석방 당일 김 박사는 갑자기 옷을 챙겨 나온 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반성문 한 장을 쓰고 최고재판소 판사로부터 석방 명령을 받은 뒤에야 풀려나는 것을 알았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탑승한 미국 국무장관 전용기에서 만난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 앤드루 김 센터장은 그동안 미 당국이 얼마나 많은 물밑 접촉을 해왔는지 알려줬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김 박사가 북한 권력의 치부와 각종 군사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 북 당국이 석방을 강경하게 거부했다고 전해주었다. 워싱턴 앤드루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기내에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들어온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미국의 영웅”이라며 “해외에 있는 국민 보호보다 더 우선순위로 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고 한다.

트럼프, 기내로 들어와 “당신은 영웅”

김 박사는 당초 예심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최고재판소에서 10년으로 감형된 것은 기적과 같았다며 체포되기 전 10여 년간 북한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했고, 특히 나선시 외자투자유치위원장으로 중국 자본 유치 실적이 있었던 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받은 3번의 표창, 그리고 미국 국적자라는 특수 상황 등이 고려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을 오가며 살았던 것을 염두에 두고 책 제목을 ‘경계인’으로 했다면서 “어느 쪽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계인은 늘 외롭다. 단발성과 일회용 인생으로 소모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쓸쓸하다”고 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김동철 박사#북한#웜비어#삭간몰#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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