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영아]중장년된 日 은둔형 외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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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둘러싸여 자택을 나오는 76세 전직 엘리트 관료의 모습은 초췌했다. 구마자와 히데아키 씨. 농림수산성의 2인자인 사무차관과 주체코 일본대사를 역임한 그는 이날 집에서 아들(44)을 흉기로 살해한 뒤 경찰에 전화해 자수했다. 나흘 전 가와사키시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의해 벌어진 무차별 살상사건을 본 뒤 아들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다고 했다. 중학생 때부터 은둔형 외톨이였던 아들은 부모에게 폭력을 휘둘러 왔다. 사건 당일 근처 초등학교에서 들리는 운동회 소리에 “시끄럽다”며 “모두 죽여버리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구마자와 씨를 걱정시킨 가와사키 사건은 지난달 28일 터졌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어린이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자살한 범인(51)은 전형적 은둔형 외톨이였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서는 물론이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같은 소통 수단도 없기 때문. “정말 존재했던 인물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명인간처럼 살았다고 한다. 범인은 어린 시절 부모 이혼 후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 80대 후반인 삼촌이 1월경 그의 방 앞에 ‘생활을 좀 바꾸라’는 메모를 붙인 것에 화를 냈고 이게 뇌관을 건드린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처음 40∼64세 중장년 외톨이들을 조사해 보니 전국 61만여 명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부모나 친지를 최후의 피난처 삼아 지내왔지만 부모 세대가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부모자식의 나이를 붙여 ‘8050 문제’, 또는 ‘7040 문제’라 부른다. 부모들은 자식을 떼어놓고 양로원에 들어갈 수도,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방문을 걸어 잠근 중년 자녀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내고자 전문단체에 의뢰해 문을 부수고 설득하는 장면이 종종 TV로 방영된다.

▷비극은 수십 년 전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과 연결되기도 한다.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들은 청년기인 1990년대에 경기침체와 취직 빙하기를 겪은 세대다. 연애 결혼 취업을 포기하고 ‘프리터’로 연명해야 했고, 몇 년 뒤 경기가 좋아졌어도 구제받지 못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린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얘기 같지 않은가. 한국의 청년들도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하는 말을 듣는다. 높아지는 청년실업, 낮아지는 결혼율, 부모 세대의 부담까지, 우리도 머잖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까 걱정이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일본 스쿨버스#가와사키 사건#히키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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