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가습기 비극’ 막아라”… 모든 살균-살충제 안전성 승인 받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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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살생물제품 물질 전수조사

인천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연구원들이 살생물질의 독성 정도를 분석하고 있다. 인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인천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연구원들이 살생물질의 독성 정도를 분석하고 있다. 인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모기 등 벌레 퇴치제와 기피제, 욕실과 주방 청소용 살균제, 가죽과 목재 보존제….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첫째 깨끗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해 어느 가정에서나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제품 모두 ‘살생물물질(殺生物物質)’을 담은 살생물제품이라는 점이다.

살생물물질이란 벌레나 곰팡이, 세균 같은 생물을 제거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을 말한다. 살아있는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람에게도 유해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세균 잡을 생각에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미 팔고 있는 살균·살충제 모두 신고해야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난해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을 제정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살생물물질과 살생물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만 시장에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한 게 이 법의 핵심이다. 화학제품안전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안전성 검토 없이 시장 유통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살생물물질이나 살생물제품을 판매하려면 국립환경과학원으로부터 안전성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미 팔고 있는 제품이라도 예외는 없다. 예전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은 감염병 예방용 살균제와 살충제 등이어도 강화된 관리 기준에 따라 반드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신규 제품이 아닌 만큼 ‘기존 살생물물질 신고’를 하면 승인유예를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신고 날짜다. 6월 30일 이전까지 신고를 마쳐야 승인 유예기간을 받을 수 있다. 승인 유예기간은 3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제품 유형별로 다르다. 이 유예기간을 받으면 살생물물질의 최종 안전성 승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품을 계속 판매할 수 있다.

기존 살생물물질 신고서에는 물질명과 함량, 용도 등을 밝혀야 한다. 그러면 국립환경과학원은 해당 물질이 사람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유해성과 위해성을 확인한다. 환경부는 인체에 해를 끼칠 것으로 판단되는 물질을 제외한 나머지 물질을 올해 말에 일괄적으로 승인 유예 대상으로 지정해 고시할 예정이다. 고시된 물질은 승인 유예기간 안에 안전성 평가 자료를 마련해 최종 승인을 받으면 된다.

기존 상생물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던 사업자가 이달 안에 신고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내년 1월 1일부터 물질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신고된 것 이외에 새로운 물질을 넣어 팔려면 승인 유예기간 없이 국립환경과학원의 최종 승인을 받은 뒤에야 제품을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 원료라도 생물 죽이면 예외 없어

기존 살생물물질의 신고 기간이 임박하자 환경과학원에는 ‘우리 제품도 신고해야 하느냐’는 제조·수입업자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특히 ‘아로마 오일로 만든 천연 모기퇴치제’ 등도 신고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많다고 한다.

환경과학원 이재우 연구사는 “살생물물질은 꼭 화학제품이 아니어도 포함된다”며 “상품 용도를 떠올려보면 신고 대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의 원료가 화학물질이냐, 천연물질이냐를 따지지 말고 제품이 생물을 죽이거나 억제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예외 없이 신고해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부는 이번 신고를 통해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살생물제품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까지는 이런 정보가 없었다. 환경부는 최소 200종 이상의 물질이 신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존 살생물물질 신고’는 안전관리의 시작”이라며 “향후 특정 물질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해당 물질이 들어간 모든 제품의 유통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살생물물질은 최종 승인을 받았더라도 제품의 안전성에 문제가 발견되면 환경과학원이 다시 조사에 나선다. 애초 승인받을 때 제출한 서류상 물질과 제품에 들어간 물질이 일치하는지 등을 불시 검증하는 식이다. 또 모든 살생물물질은 승인 이후 물질별로 5∼10년마다 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환경부는 ‘기존 살생물물질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 이달 말까지 권역별로 신고 설명회를 연다. 살생물물질 신고는 환경과학원에서 운영하는 ‘화학제품관리시스템’에서 할 수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가습기 살균제 사건#살생물제품#안전성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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