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35m 크루즈선이 27m짜리 유람선 덮쳐… 7초만에 침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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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관광객 다뉴브강 참변]사고 어쩌다가 일어났나


29일(현지 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는 갑작스레 방향을 바꾼 ‘바이킹 시긴’호에 추돌당한 뒤 순식간인 7초 만에 침몰했다. 갑판 승객은 그대로 물에 빠졌고 1층 선실의 관광객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뉴브강의 부다페스트 도심 구간은 수심이 5m 안팎으로 깊었고 폭우가 내려 유속도 빠른 상태였다. 탑승객의 상당수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 크루즈선이 뒤에서 밀어 침몰

가해선박에 추돌 흔적 선명 30일(현지 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의 선두에 전날 발생한 추돌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부다페스트=AP 뉴시스
가해선박에 추돌 흔적 선명 30일(현지 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의 선두에 전날 발생한 추돌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부다페스트=AP 뉴시스
헝가리 경찰은 30일 브리핑에서 “29일 오후 9시 5분경 두 배가 부딪쳤으며 사고 선박은 추돌 7초 만에 침몰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상 서비스 사이트가 공개한 기상관측용 폐쇄회로(CC)TV 화면에 따르면 대형 크루즈선이 머르기트 교량의 교각 쪽으로 향하다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모습이 포착됐다. 다리 아래에서 크루즈선이 방향을 튼 직후 앞서 가던 작은 선박을 뒤에서 추돌하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헝가리 현지 경찰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크루즈선이 허블레아니호를 뒤에서 추돌한 뒤 계속 앞으로 밀었고 허블레아니호는 순식간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인근 다른 선박의 탑승자들은 “사람들이 물에 빠졌다”고 소리치며 발을 동동 구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크루즈선은 추돌한 뒤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허블레아니호는 길이 약 27m에 승선 인원 45∼60명으로 다뉴브강 유람선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선박 중 하나다. 반면 길이 135m의 바이킹 시긴호는 190명을 태울 정도로 규모가 크다. 뒤에서 덩치가 큰 배에 받히면 미처 피하지 못한 작은 배는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가라앉을 위험성이 커진다.

강형식 외교부 해외안전관리기획관은 30일 브리핑에서 “현지 시간으로 29일 오후 8시경 우리 관광객이 탑승한 유람선이 출항했고 (사고가 발생한) 오후 9시 5분 정도가 거의 돌아올 때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8박 9일 일정의 발칸, 동유럽 여행 5일차였던 이들은 사흘 뒤 귀국할 예정이었다.

○ 폭우 이어져 유속 빨라졌다

한국 기상청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현지 시간 29일 오전 2시부터 24시간 동안 내린 누적 강수량은 37mm였다. 헝가리 5월 평균 누적 강수량(55mm)의 67.3%에 달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부터 부다페스트에는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이어졌다. 현지 M1방송은 강물이 불어난 상황에서 곳곳에 소용돌이가 있었다고 전했다.

일부를 제외한 승객 대부분이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30일 브리핑에서 “확인 결과 선실에 있을 경우 안전을 위해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안전한 장소에 보관한 후 갑판에 올라갈 때 입도록 했다”며 “선박이 투어를 마치고 귀환하는 길이라 많은 고객들이 실내에 있었기 때문에 착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허블레아니호의 운항사 파노라마 덱 대변인은 현지 인터뷰에서 “평소 같은 날이었고 일반적인 운항이었다. 우리는 하루에 수천 명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유람선 투어를 진행한다. 이런 일(침몰)이 발생할 징후 같은 건 없었다”고 말했다.

○ “안전불감증, 예견된 참사” 목소리도

현지 관광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예견된 참사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폭우 속에서도 다뉴브강에는 수많은 유람선이 떠 있었다. 다뉴브강에 길이 100m가 넘는 대형 유람선이 다수 도입되면서 기존의 작은 유람선 운항이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왔고 폭우가 쏟아졌지만 선사들은 유람선 운항을 강행했다. 유람선이 클수록 큰 물살을 만들어 작은 유람선에 영향을 미치지만 야간 운항에서는 작은 유람선이 큰 유람선의 시야 안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많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선 1년 반 전에도 유람선과 호텔 크루즈선이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시에는 1명이 부상을 입었을 뿐 사망자는 없었다. 27년간 유람선을 운항한 쿠르벨리 언드라스 씨는 현지 언론에 “사고가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며 “큰일이 일어나야 위험한 운항 관습이 바뀔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임보미 bom@donga.com·신나리·김호경 기자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허블레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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