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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베르나르가 묻다… “SF, 추리, 판타지는 문학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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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베르나르가 묻다… “SF, 추리, 판타지는 문학인가 아닌가”

이설 기자 입력 2019-05-25 03:00수정 2019-05-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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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1·2/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전미연 옮김/각 328쪽·각 1만4000원·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신간 ‘죽음’에서 인공지능(AI)이 쓰는 소설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의 책을 출간해온 출판사는 가브리엘이 사망하자 그의 내면을 재현한 AI로 소설을 완성하려 한다. 열린책들 제공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8)는 한국인에게 오랜 친구 같은 작가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잠’(2017년)…. 25년 넘게 스타 작가로 롱런한 덕에 세대 불문 추억의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고양이’ 이후 1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 ‘죽음’ 역시 의리 혹은 기대로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

방대한 그의 작품 세계는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지식 기반, 백과사전, 죽음과 영성, 과학, 판타지 등을 변주해 왔다. 이번 작품은 베르베르 DNA를 지닌 개체들의 총체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닮은 주인공이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곳곳에 죽음에 관한 백과사전을 배치했다. 장르는 ‘공상과학(SF)+추리+판타지’.

주인공은 인기 추리 작가 가브리엘 웰즈. 야심작 ‘천 살 인간’의 출간을 앞둔 그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확신한 그는 능력 있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와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선다.

용의자는 정반대 기질을 타고난 쌍둥이 형 토마 웰즈, 영원한 앙숙인 평론가 장 무아지, 출판사 편집자 알렉상드르 드 빌랑브뢰즈. 족보 없는 수사가 질주하는 가운데 베르베르 특유의 상황 농담이 웃음보를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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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중 인물을 동원해 작정한 듯 프랑스 문단을 풍자한다. “그 자체로 나쁜 문학 장르가 있는 게 아니라, 장르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을 뿐이에요.”(웰즈) “독자들은 어리석을 때가 많습니다. 선택을 허용하면 대개가 쉬운 쪽을 선호하죠.”(무아지) 베르베르가 장르 작가로 겪어온 오랜 설움은 작가들의 영혼 전쟁에서 ‘웃프게’ 폭발한다.

진일보한 죽음과 영성에 대한 인식도 관전 포인트. 타나토노트에서 영계를, 잠에서 수면의 단계를 탐구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망자의 눈으로 이승을 내려다본다. 그와 ‘베프’인 할아버지 유령은 “죽음은 해방인 반면 출생은 자신을 꽃피우기 힘든 억압적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웰즈는 “(인간은) 정신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정신”이라고 여긴다.

죽은 뒤 더 유명해진 ‘미라가 된 강도’, 비평가를 왜소음경증, 소아성애자로 묘사해 복수한 마이클 크라이턴의 이야기를 담은 ‘마이크로 페니스의 법칙’…. 적재적소에 선물처럼 자리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읽는 맛을 더한다.

베르베르가 주인공으로 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채운 환상 문학, 영웅 판타지, SF, 추리, 스릴러, 공포 소설…이것이 과연 문학입니까?” 스스로를 거침없이 희화화하며 문학계의 평화를 도모하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다소 엉성한 추리와 그리 충격적이지 않은 결말에도 작가와 계속 의리를 지키고픈 이유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죽음#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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