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읽기 능력 잃어가는 디지털 세대… 처방은 종이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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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 지음·전병근 옮김/360쪽·1만6000원·어크로스

영어권 국가의 청소년들 유행어 중에는 ‘TL ; DR(Too Long ; Didin't Read)’라는 단어가 있다. 너무 길어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쇄물 대신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를 통해 훑어보거나 건너뛰는 방식으로 글자를 읽는 청소년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읽기 능력은 추론과 반성을 가능케 하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며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라며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져 읽기 능력이 떨어진다면 이 같은 인류의 고유한 강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영어권 국가의 청소년들 유행어 중에는 ‘TL ; DR(Too Long ; Didin't Read)’라는 단어가 있다. 너무 길어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쇄물 대신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를 통해 훑어보거나 건너뛰는 방식으로 글자를 읽는 청소년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읽기 능력은 추론과 반성을 가능케 하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며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라며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져 읽기 능력이 떨어진다면 이 같은 인류의 고유한 강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책 제목처럼 독서를 권하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야 좋은 것”이라는 뻔한 훈계조가 아니다. 뇌과학 분야의 최신 성과 중에서도 읽기와 관련된 연구 결과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편지글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2009년 발간한 책 ‘책 읽는 뇌’를 통해 인류의 책 읽기 능력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진화 끝에 힘겹게 획득한 성취라고 주장하며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미국의 인지신경학자다. 특히 깊이 읽기를 통해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의 고도화된 문명을 이룩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간과해선 안 되는 맹점이 있다. 바로 읽기란 타고난 것이 아닌 학습과 숙달에 의한 성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상당한 지적 수준에 이른 독자라 해도 깊이 읽는 능력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 감명 깊게 읽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어느 날 다시 꺼내 들었지만 더 이상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져 깊이 읽기의 방법을 놓쳐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전 세계가 디지털 문화로 변모해 갔다. 덩달아 읽기의 주된 대상 역시 인쇄물에서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로 바뀌었다. 이 책은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지면서 깊이 읽기의 방법을 잃어 버렸을 때 나타나는 폐해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와 함께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한 자신의 노력을 소개하며 특히 청소년들에게 권해야 할 올바른 읽기 교육 방법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디지털 읽기의 가장 큰 위험성은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앗아간다는 점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정보산업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GB(기가바이트)에 이른다고 한다. 약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육박하는 숫자다. 그러나 저자는 밀도가 떨어지는 이 같은 방식은 연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가 인쇄물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 새너제이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읽기에서는 ‘훑어보기’가 표준 방식이 된다. 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중요한 글자만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한 후 결론으로 직행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 단어를 듬성듬성 건너뛰게 되고, 글에 담긴 논리적인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능력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에 크나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가짜뉴스의 범람과 이를 구별해내지 못하는 흐름 역시 저자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기를 버리고, 무조건 책을 들어야 할까. 저자는 양자택일의 관점이 아닌 신중한 균형의 길을 제시한다. 바로 양손잡이 읽기 뇌의 길이다. 필요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검색하는 디지털 특화 읽기 방식과 창의적 사고와 깊이 있는 사유를 가능케 할 인쇄물 기반 읽기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매체마다 다른 읽는 속도와 리듬, 습관을 형성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현재 우리들에게 제대로 읽는 법을 일러주는 귀한 참고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디지털 세대#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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