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만 되면 울려대는 배꼽시계…당신도 야식 중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6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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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업무,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공부 때문에 밤에도 잠 못 드는 현대인들은 힘든 하루의 보상으로 야식을 찾기 일쑤입니다. 거창하게 음식을 할 필요도 없이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가정식 대체식품이 편의점에 널렸고, 그마저 귀찮다면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해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해 먹을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 있죠. 오늘은 이래서 내일은 저래서 야식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야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밤만 되면 배 고파요

“학교 기숙사에서는 대부분 배달 앱으로 음식을 시켜요. 배달원이 도착하면 기숙사 앞에 나가 음식을 받아오죠. 통금시간인 자정까지만 배달음식을 받을 수 있어요. 주로 치킨을 시켜서 룸메이트들과 모여 먹습니다. 주류 반입 금지라 ‘치맥’을 못 하는 건 아쉽지만 야식 배달을 금지한 학교에 비하면 감사할 따름이죠. 시험 기간에는 통금시간을 새벽 2시로 늘려줘서 더 늦은 시간까지 야식을 먹어요. 다른 야식 루트도 있습니다. 기숙사 옆 대형마트 마감 세일 시간을 노리는 거예요. 제 선택은 초밥입니다. 밤늦게 먹는 초밥이라니. 호화로운 밤참이죠.”-한승현 씨(22·대학생)

“야간자율학습이 필수인 학교에 다니는지라 보통은 자정이 다돼서 집에 와요. 오후 6시 반에 저녁을 먹기 때문에 집에 올 때쯤에는 허기가 지죠.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야식을 먹어요. 치킨, 족발, 보쌈, 회도 좋지만 매운 떡볶이가 최고예요. 시험 기간에 공부가 안 돼서 화날 때는 그중 가장 매운맛으로 마음을 달래야 해요.”-김정현 양(16·경일여고 1학년)

“회사에서 당직을 서는 날에는 퇴근이 늦어요. 집에 가면 출출하긴 하지만 뭘 시켜 먹는 것도 번거롭고 직접 해 먹기는 더 귀찮죠. 그럴 때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합니다. 장 볼 때 냉동만두를 몇 봉지 사서 냉동실에 넣어놓거든요. 기기에 만두를 10개 정도 넣고 10분만 기다리면 끝이에요.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기름기도 없어서 살찔 걱정도 덜해요.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틀어놓고 차가운 맥주 한 캔과 함께 먹으면 최고죠.”-이진형 씨(29·회사원)

“심야 영화를 볼 때 간식 찾는 사람이 많아요. ‘영화=팝콘’은 공식이잖아요. 이번에 개봉한 어벤져스는 긴 상영 시간에 맞춰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3시간 콤보도 따로 나왔어요. 음료, 팝콘, 나초, 핫도그로 구성돼있는데 새벽에도 인기폭발이에요. 늦은 시간에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팝콘과 즉석구이 오징어입니다. 심지어는 한밤 중 극장에서만 파는 팝콘이랑 오징어를 따로 사러 오는 단골손님도 많아요.”-박모 씨(21·영화관 아르바이트생)

“월드컵처럼 큰 경기가 있는 날에는 새벽 3, 4시에도 친구들과 동네 치킨집에 모입니다. 큰 스크린으로 보면서 치맥을 곁들여야 즐겁게 응원할 수 있어요. 유럽 리그경기도 챙겨보는데 제가 응원하는 리버풀이 중요한 경기를 치르는 날에는 혼자만의 야식을 즐깁니다. 곧 리버풀이 리그 최종전을 치르는데 그날도 치킨과 함께 밤을 보낼 예정이에요.”-서예지 씨(23·대학생)

●해 지면 문전성시 이뤄

“오후 3시에 치킨 집 문을 열지만, 본격적인 장사는 6시부터에요. 그때부터 주문량이 늘기 시작해 9시가 가까워질 때쯤 피크를 찍죠. 준비해 둔 닭이 부족해 자정도 안 돼서 문 닫는 날도 있어요. 그럴 땐 치킨의 인기를 실감하죠. 아무래도 먹기 편하고 술 한 잔하면서 안주 삼아 먹어도 좋기 때문에 야식으로는 1등인 것 같아요. 프라이드치킨도 인기가 좋지만, 밤에는 고추가 들어간 매운 치킨이나 달달한 간장 양념 치킨이 많이 나갑니다. 늦은 시간에는 자극적인 맛이 당기기 때문 아닐까요?”-김모 씨(40대·프랜차이즈 치킨집 운영)

“새벽녘에 무슨 순댓국이냐 하겠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이 꽤 됩니다. 그 중에서도 독서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들르는 단골이에요. 새벽 2시에 독서실 문을 닫고 집 가기 전에 들른다고 하더군요. 늦게까지 일하는 학생이 기특해서 손님이 없을 땐 순대를 서비스로 주기도 합니다. 밤늦은 시간에 장사를 하다 보면 혼자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 서로 말동무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새벽 4시까지 일하면 몸은 피곤하지만 준비한 재료를 다 소진하고 퇴근하면 뿌듯하죠.”-민모 씨(60·순댓국 전문점 운영)

“금, 토, 일 저녁과 새벽에 손님이 가장 많아요. 술 한 잔 하면 국물이 생각나잖아요. 한 주를 마무리하며 얼큰한 짬뽕 국물에 술 한 잔을 기울이러들 오십니다. 그 중에도 오후 10시, 새벽 4시 경 이렇게 두 시간대가 붐벼요. 매운맛을 좋아하는 20대 젊은 층도 많지만 40대 이상 남성 손님들도 많습니다. 밤에는 매운맛이 생각난다고들 하잖아요. 저희는 짬뽕의 맵기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실제로 늦은 시간에는 가장 매운맛이 인기 있어요.”-최모 씨(20대·24시 짬뽕전문점 운영)

●손맛부터 앱까지… ‘야식 변천사’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겨울에 밤만 되면 ‘찹쌀떡~ 메밀묵~’하는 소리가 동네에 울렸죠. 아들, 딸이 ‘자는 척’ 하는 걸 뻔히 아시는 아버지가 종종 떡장수를 불러 찹쌀떡 한 봉지를 사주셨어요. 예전에는 집이 다 주택이다 보니 1층에서 창문 열고 계산하곤 했죠. 한 봉지에 큰 찹쌀떡이 5개쯤 들었는데 그때 돈으로 50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요새는 찹쌀떡 장수가 거의 사라졌죠. 몇 해 전에 한 번 사 먹어 봤는데 가격은 5000원으로 올랐지만 옛날 맛은 안 나더라고요.”-정모 씨(57·회사원)

“집 근처에 있는 가락국숫집의 가락국수가 저의 단골 야식 메뉴에요. 원래는 골목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했어요. 주황색 천막을 걷고 들어가면 긴 의자에 여러 명이 앉아서 먹는 식이었죠. 술 한 잔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종종 들러서 먹은 지도 벌써 10년째네요. 저녁 늦게 가도 손님 없는 날이 없는 곳이죠. 그래서인지 3년 전 부터는 근처에 작은 가게를 냈더라고요. 포장마차 시절부터 사장님이 손으로 직접 반죽을 뽑아 주는데 양도 푸짐하고 맛있어요. 자장면도 있지만 술 먹은 밤에는 국물 있는 가락국수가 더 좋더라고요.”-김모 씨(50·회사원)

“제가 동네에서 소문난 양념 닭발 요리사에요. 밤늦게 퇴근하고 매운 음식이 당길 때 양념 닭발을 직접 만들어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 겸 야식으로 먹죠. 때로는 친구들을 불러서 먹기도 하고 이웃집에 싸서 가기도 하죠. 다들 웬만한 곳에서 시켜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해주니 뿌듯해요. 사 먹는 것보다 맛있고 저렴하게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이혜숙 씨(50·대형마트 직원)

“예전에는 전단이나 배달 책자를 보고 직접 전화해서 배달을 시켰지만, 지금은 배달 앱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저도 가족들이 집을 비우거나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배달 앱을 종종 씁니다. 한 번 이용하기 시작하니 편해서 계속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메뉴를 음식 카테고리, 브랜드 별로 한눈에 볼 수 있고 굳이 전화하지 않아도 음식을 주문할 수 있잖아요. 카드를 등록해두면 자동으로 결제까지 되기에 배달원과 마주치지 않아도 음식을 받을 수 있어요. 예전에는 씻고 있다가도 배달원이 오면 급하게 나와서 계산해야 했는데 지금은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하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솔직하게 쓴 후기도 볼 수 있어 주문할 때 참고가 되기도 하고요.”-김홍석 씨(23·대학생)

●미운 야식

“요즘은 음식 관련된 프로그램이 정말 많아요. 밤에 TV를 틀어도 채널마다 본방송이든 재방송이든 다 ‘먹방(먹는 방송)’이죠. 하루는 저녁에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데 거기서 연예인이 곱창을 먹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분명 저녁 식사를 했는데도 보고 있으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늦게 먹는 게 몸에 좋지 않은 건 알지만 TV를 볼 때마다 의지가 약해져서 큰일이에요. 식욕을 참지 못하는 제 잘못이 크지만 의지를 꺾는 여러 먹방들이 야속하기도 해요.”-김현종 씨(32·회사원)

“저는 밤에 뭘 잘 안 먹지만 남편과 아들은 야식을 즐겨 먹어요. 불행하게도 시켜 먹는 건 안 좋아하죠. 그래서 만들어 줘야하는 데 요리는 늘 제 몫이에요. 평소에도 그렇지만 피곤한 날에는 밤늦게 음식 하는 일이 정말 귀찮잖아요. 남편은 잔치국수를, 아들은 쫄면을 해달라고 하는데 둘 다 야속해서 볶음밥을 해줘버렸지 뭐예요. 다 먹고 나서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자정이 넘는 게 다반사에요.”-박모 씨(49·가정주부)

“수 년 째 포장마차에서 다코야키를 팔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손님이 줄어들어 힘드네요. 학원과 회사들이 몰려있는 곳인 만큼 밤에도 수업을 마친 사람들, 퇴근한 사람들이 와서 먹고 가거나 포장해갈 때가 많았었는데…. 밤 장사 잘되는 것도 옛말이에요. 경기가 어렵다는 걸 체감합니다.”-김모 씨(60대·자영업)

“오후 7시 이후 식사량이 하루 섭취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증상을 ‘야식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아침, 점심을 부실하게 먹고 밤늦게 몰아 먹는 게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져 야식 증후군을 유발하죠. 이런 식습관은 내장비만, 당뇨로 이어질 수 있어요. 밤사이 장기가 쉬지 못해 장기기능이 저하될 수도 있고요. 야식 증후군의 발생 원인은 수면 부족, 불규칙한 생활 습관, 스트레스입니다. 증상을 개선하려면 저녁에 먹는 식사를 차츰 아침으로 옮기는 식으로 식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3개월 정도 노력하면 습관을 바꿀 수 있습니다.”-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밤만 되면 ‘먹어야 한다’는 본능과 ‘참아야 한다’는 이성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입니다. ‘나홀로족’이 늘고 불규칙한 생활이 잦은 현대인의 특성상 밤에 하는 식사가 익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먹는 입은 즐겁지만 밤새워 먹은 음식들을 소화해야 하는 몸은 괴롭습니다. 물론 식욕은 본능이기에 애써 참으려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입니다. 참고 이기려고 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여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죠. 야식을 줄이고 부족한 만큼을 아침에 보충해 먹으며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아침과 저녁의 사이클을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은 100일이라고 합니다. 배 채우기 대신 지친 하루를 위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100일의 기적처럼 야식과 이별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신무경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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