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감독·제작자가 말하는 ‘악인전’ 탄생 스토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5월 16일 06시 57분


영화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왼쪽)과 장원석 대표. 2017년 ‘대장 김창수’에 이어 ‘악인전’으로 다시 뭉친 두 사람은 할리우드 리메이크와 칸 국제영화제 상영 등 낭보를 연이어 전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왼쪽)과 장원석 대표. 2017년 ‘대장 김창수’에 이어 ‘악인전’으로 다시 뭉친 두 사람은 할리우드 리메이크와 칸 국제영화제 상영 등 낭보를 연이어 전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한 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 다양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마동석 주연의 ‘악인전’이다. 일찌감치 104개국에 팔렸고, 할리우드 리메이크까지 확정됐다. 마침 개봉일인 15일(이하 한국시간) 개막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도 초청돼 23일 선보인다.

개봉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악인전’ 탄생의 두 주역인 이원태 감독(51)과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43)를 만났다. 첫 합작인 ‘대장 김창수’(2017)에 이어 다시 손잡은 이들은 “안 그런 척 하고 있지만 지금 마음은 몹시 초조하다”고 했다.

-‘악인전’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이원태(이하 이) “사회 시스템의 한계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늘 생각했어요. 법질서가 개인의 삶을 다 보호해주진 못하잖아요. 실현되지 못하는 정의에서 오는 부조리와 부조화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죠. 오랫동안 꽂힌 주제에요. 제도가 해주지 못하는 일들을 그 밖의 사람들이 처리하는 이야기에 대중도 대리만족을 느낄 거라 여겼습니다.”

장원석(이하 장)
“‘대장 김창수’ 촬영 직전에 감독님께서 아이디어를 들려줬는데 재미있어서 한 번 써 보시라고 했더니 진짜 쓰셨어요. 하하! 보통 감독들은 편집 끝나고 개봉 때까지 압박감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거든요. 이 감독님은 달라요. 활자 중독인지 일주일에 책을 두세 권씩 읽는다니까요.” (이 말에 감독은 손사래를 쳤지만 인터뷰 일정이 빡빡한 와중에도 그의 앞에는 500페이지가 넘는 필립 로스의 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가 놓여 있었다.)

‘악인전’은 연쇄살인마의 표적이 됐다가 살아난 조직의 보스(마동석)와 ‘미친개’로 불리는 형사(김무열)가 손잡고 악마 같은 살인마(김성규)를 잡는 이야기다. “선과 악의 본질”, “인생의 아이러니”에 집중하고 싶다는 감독은 이를 범죄액션 장르로 풀어냈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무렵 문득 ‘워스트(worst)’ ‘더 워스트(the worst)’ ‘더 배드(the bad)’라는 세 글자가 딱 떠오르더라고요. 그걸 화두 삼아 쓰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장 대표가 작업실 화이트보드에 써 놓은 그 단어를 보더니, 쓱 지우고 ‘더 갱스터(the gangster)’ ‘더 캅(the cop)’ ‘더 데블(the devil)’이라고 썼어요. 결국 ‘악인전’의 영어 제목이 됐죠.” (이)

“형사와 조폭이 연쇄살인마를 쫓는다? 너무 재밌잖아요. 조폭이 형사와 엮이고, 형사와 살인마가 맞붙는 영화는 할리우드에도, 유럽에도 많아요. 하지만 셋이 맞물리는 작품은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할리우드에서도 흥미를 가진 것 같고요.” (장) (‘악인전’은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사 발보아 프로덕션을 통해 리메이크된다. 장 대표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마동석도 동일한 역할로 출연한다.)

영화 ‘악인전’의 한 장면. 사진제공|키위미디어그룹·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악인전’의 한 장면. 사진제공|키위미디어그룹·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할리우드 리메이크 논의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그동안 해온 영화들의 리메이크 판권 판매 경험이 있어요. 공동 제작한 ‘끝까지 간다’는 중국서 리메이크되기도 했고요. 처음엔 ‘할리우드로 가서 옆에서 구경이라고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죠. ‘악인전’은 마침 마동석 배우가 할리우드로부터 여러 제안을 받고 있던 터였고, 그런 제안 속에 운 좋게 올해 1월 현지 피칭 기회를 얻었어요. 그 뒤 칸 국제영화제 진출까지 확정되니까 점점 더 좋은 제안을 받게 됐고요. 제가 리메이크 버전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거나 마동석 배우가 똑같은 역할로 출연하는 건, 드문 경우에요. 감독 후보군 중에 이원태 감독도 올라 있고요.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웃음) 지금은 그저 ‘현실화 된다’는 가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죠. 우리 모두 쉽지 않다는 건 알아요. 이제 시작입니다.”

“‘악인전’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람 안에서 곪아터지는 문제가 있잖아요. 범죄액션은 글로벌 장르이기도 하고요.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람의 이야기와 익숙한 장르의 만남이니까 가능하지 않았나 해요.”

두 사람의 만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이 감독이 투자사에서 근무하던 때로, 장 대표가 ‘끝까지 간다’ ‘터널’ ‘범죄도시’ 등 흥행작을 내놓기 훨씬 전이다.

“영화 투자 받으러 온 사람인데 안 해주면 안 될 것처럼 당당한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하하! 젊은 제작자의 좋은 기획을 키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회사를 설득했죠.” (이)

“그때 저는 에너지가 넘쳐 쇠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하! 그 뒤로 감독님이 데뷔작으로 준비하던 다른 영화에 마동석 형이 출연하기로 돼 있었어요. 그렇게 동석 형을 통해 다시 반갑게 재회했죠.” (장)

-마동석을 중심으로 뭉친 인연이군요.

“마동석과 인연도 오래됐죠. 그가 가지고 있는 ‘마블리’ 이미지를 이번에 완전히 바꾸고 싶었어요. 기존 영화에서 ‘힘 센 착한 남자’였다면, 이번엔 ‘냉정하고 집요한 놈’ ‘잔인하고 집요한 놈’이어야 했어요. 형사, 조직 보스, 살인마의 설정 탓에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액션의 설계, 마동석 캐릭터를 통해 전형성을 깨려 했어요.”

“20년 넘게 영화 일을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건 없는 것 같아요.(웃음) 무협지만 봐도 대부분 똑같잖아요. ‘악인전’은 가정의 달에 어른들만 볼 수 있는, 진~한 영화입니다.”

-국내 개봉 버전과 칸 상영 버전이 다른가요.

“똑같습니다! 칸에 출품할 땐 중간 편집 버전을 보냈고 나중에 최종본을 다시 보냈어요. 칸에선 둘 다 좋다고, 감독님에게 선택을 맡겼어요.”

“국내 관객이 보는 것과 똑같이 칸에서 상영하길 원했어요. 당연히 그래야죠.”

이원태 감독은 1995년 MBC PD로 출발했다. 드라마 등을 거쳐 2006년 무렵 퇴사해 영화 데뷔를 준비했다. 오직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 기약 없이 나선 도전이었다. 투자사에도 몸담았고 이후 소설가로도 활약했다. ‘조선마술사’ ‘아편전쟁’ 등 소설이 그의 작품. 지금이야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연출자들의 교류도 활발하지만 그땐 달랐다. “시나리오를 써도 누구에게 보여줘야 하는지 몰랐던” 감독은 왜 방송사 PD가 영화를 하려 하느냐는 시선도 받았다고 돌이켰다. 그는 “칸에 초청되니 ‘이제 영화인이 됐나’ 싶다”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20년도 더 지난 기억을 꺼냈다.

“처음부터 영화가 좋았어요. 1996년인가, 제가 조연출을 맡고 있던 드라마에 강제규 감독님의 아내인 박성미 배우가 출연하고 있었어요. 하루는 밤늦게 촬영이 끝났는데 강제규 감독님이 아내를 데리러 왔어요. 제가 감독님 고등학교 후배이거든요. ‘마산고등학교 후배입니다’라고 인사했더니, 반갑게 명함을 주면서 ‘작은 화면 말고 큰 스크린에서 영화 만들어야지!’라고 해준 말이 지금도 생생해요. 짧은 조우였는데 그 말이 잊히지 않아요. 그때 제가 28살이었어요.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도 계속 그 말이 생각났어요.”

영화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오른쪽)과 장원석 대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오른쪽)과 장원석 대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제작자가 보기에 이원태 감독은 어떤 연출자인가요.

“결국 경험은 무시할 수 없어요. 감독님은 굵직한 사회 경험이 많잖아요. 시나리오나 소설도 썼고, 연출 경험에 콘텐츠 발굴도 했고요. 그런 과정에서 실력이 나옵니다. 감독님은 제작사만 차리지 않았을 뿐이지, 저는 영화사 이사님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감독님과의 작업은 늘 공동 제작이라고 여기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마동석은 ‘악인전’의 칸 국제영화제 상영이 확정되자마자 이들에게 문자를 보내 레드카펫에서 입을 턱시도는 자신이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배우들이 많이 가는 엄청 유명한 맞춤 양복집에서 저랑 감독님, PD까지 맞췄어요. 물론 칸 상영은 가문의 영광이죠. 그래도 저희에겐 국내 관객의 반응이 먼저이고, 가장 중요해요.” (장)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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