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매몰된 노조 현실, 조합원이 봐도 부끄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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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러스트벨트’ 노조원들이 본 노조 현주소
“경제환경 변하는데 강경투쟁 반복, 집행부와 이견 있어도 말도 못꺼내”
“사측은 노조 달래기에 급급… 습관적 파업 관행 못끊어” 지적도

“회사는 노조 대의원과 친해지려고 술도 사준다. 대의원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노조의 힘은 회사가 준 셈이다.”

“아파트에서조차 동대표가 잘못하면 주민이 민원을 내지만 노조에선 집행부와 의견이 달라도 조합원이 아무 말 못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월 말부터 두 달 동안 울산, 전북 전주, 부산 강서, 경북 북부권, 인천 남동, 부평 등 전국 6개 한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역) 노조 집행부와 노동자 30명을 만나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이다.

경제 환경의 변화로 대기업조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조 역시 안팎으로부터 변신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현대차 노조가 2025년까지 잉여인력이 20∼30% 생길 것으로 보고 지난달 사측에 특별고용안정위원회 개최를 요구한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발로다.

그럼에도 이번 취재에선 노조가 그동안의 폐쇄성과 정파주의에 함몰돼 자기만의 성(城)을 쌓고 있다는 내부의 자성이 많았다. 현대차 조합원 A 씨는 “예전 노조는 노동자집단 전체를 대변하려 노력했지만 지금은 취업 비리로 노조 간부가 구속되는 현실이 부끄럽다”고 했다.

다른 조합원은 “노조 안에 파벌이 여러 개여서 선명성 경쟁을 하다 보니 각자 강경투쟁을 선택하게 된다”고 했다.

과거 고속성장 과정에서 굳어진 노사 간 ‘적대적 공생’에 노조가 안주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기업 1차 협력사 노조 간부 A 씨는 “노조가 파업을 하면 경영진은 원칙 대응을 말하면서도 뒤로는 임금이나 복지 혜택으로 노조를 달래 온 게 관행이었다. 그래서 파업이 습관화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기업들의 사정이 악화되면서 과거의 관행을 끊어야 하지만 사측은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노조는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꾀할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결국 하청업체에 전가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측이 하청업체의 희생을 전제로 자사 노조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구습을 끊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완성차 업체 1차 협력사인 인천 모기업의 노조지회장 B 씨는 “완성차 노조가 임금을 올리면 그 부담이 우리한테 온다. 하청업체도 월급을 올리려 하면 원청업체가 ‘그럴 여유 있으면 공급단가를 낮추라’고 하기 일쑤”라고 했다.

본보는 완성차 노조 간부와 직접 통화해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거나 업계 관계자를 통해 노조원과의 대면 인터뷰를 가졌다. 현대차와 르노삼성차, 협력사 등의 현직 노조 간부 6명, 전직 노조 간부 4명, 일반 노조원 20명이 취재에 응했다.

전주=송충현 balgun@donga.com / 울산=김준일 / 인천=최혜령 기자
#노조#완성차#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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