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레전드되다…“외로웠던 내게 발레는 친구”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27일 1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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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농담을 나누는 사소한 시간들이요. 국립발레단은 젊은 단체에요. 젊은 친구들 덕분에 저 역시 젊음을 유지했어요. 이제 그 젊음이, 동료들이 그리울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의 간판인 수석무용수 김지영(41)이 퇴단한다. 6월23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지젤’을 끝으로 이 발레단과 작별을 고한다. 이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 팬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침묵의 심연에서 겨우 말을 꺼낸 김지영에게서는 국립발레단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났다. 섬세한 그녀의 춤처럼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을 안고 있는 말들은, 김지영의 솔직한 속내로 무거운 옷자락을 점차 벗기 시작했다. 항해는 언젠가 끝나게 돼 있고, 다시 시작하게 돼 있다.

1978년생 김지영 중 아마 가장 유명할 김지영, 국립발레단의 상징이자 여전히 간판이다. 발레강국 러시아의 명문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996년 당시 최연소(18세)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초기부터 주역을 꿰차며 한국발레를 대표하게 된 김지영은 하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진출, 2007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그러다가 2년만에 귀국을 결정했다. 당시 국립발레단 최태지(60) 단장이 국내 발레 발전에 기여해달라며 러브콜했다. 이후 10년 간 국립발레단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입단 23년 만에 발레단을 떠나지만 현역 은퇴는 아니다. 경희대 무용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기고 틈나는 대로 무대에도 오른다. 7월 해외 갈라 공연도 예정됐다.
김지영은 여전히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드라마 발레 ‘마타하리’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그녀가 아니면 보여주기 힘든 농익은 감정연기를 펼쳐냈다. 28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오로라 공주’를 맡아 여전히 싱그럽고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퇴단하나, 김지영은 “그런 것을 생각할 시기가 됐어요”라고 했다. “작년에 경희대에서 특채 (교수직) 제의가 왔어요. 교수는 평소 꿈도 안 꿔본 직업이에요. 제가 학력도 안 되고, 교수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학과장님 말씀을 듣고, 교수를 하기로 결정을 하고, 퇴단을 결정했고 물 흐르듯이 이어졌죠. 젊은 친구들에게 제 경험, 프로 무용수로서 준비 과정들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런데 사실 겁이 많이 나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도 가서 많이 배워야 해요. 실수도 많이 할 것이니, 조언도 많이 들어야죠.”

퇴단을 해야지, 라고 정확한 시기를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1년 동안 준비를 해왔다. 무엇보다 지금 시기에 퇴단을 결정한 것은 ‘그리움이 남는 무용수가 되기에 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계속 춤을 추다 보면 저를 지겨워하실 것 같았어요. 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리미트가 지금인 것 같았죠. 춤에도 유행이 있어요. ‘시대적인 춤’이라는 것이 있죠. 저는 전 세대의 춤을 추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제 제너레이션은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 같죠.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춤이 나와야 하고,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죠.”

‘지젤’이 국립발레단 무용수로서 마지막 작품이 됐는데 그녀가 평소 ‘숙제’처럼 여겨온 전막 발레다. ‘지젤’은 시골에 사는 소녀 지젤이 신분뿐만 아니라 약혼자의 존재를 숨긴 알브레히트에게 배신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젤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알브레히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프로 데뷔 초기 통통 튀는 발랄한 매력이 넘치던 김지영은 희극 발레 ‘돈키호테’의 선술집 딸 ‘키트리’ 같은 역에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김지영은 “제가 사랑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속으로는 아닌데. ‘지젤’도 잘 어울리는데 했지만 제 생각과 관객들의 생각에 갭이 있었던 것”이라며 웃었다.

1999년 ‘지젤’을 처음 맡게 됐지만, 왠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당시 공연을 잘 끝냈는데, 굉장히 기분이 나쁜 거예요. 지젤의 감정은 알겠지만, 빠져들지 못했던 거죠. 얼마전부터 여운이 남기 시작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요. 영화배우들이 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무용수들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는데 기분을 이해할 것 같더라고요. 끝까지 정답을 낼 수 없지만, 이해를 못했던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이해하고, 내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됐죠. 숙제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규칙적인 발레단 생활을 벗어나면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고개를 가로젓는다. “발레단 생활을 하면 제가 하기 싫어도, 관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발레단을 나가버리면 그 때부터 정말 자신과 싸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제 관리도 해야 하니 더 힘들고 여유가 더 없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이죠.”

좀 더 오래 발레단 생활을 하며 롤모델 역을 해주기를 바라는 후배들도 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이로든,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도 있겠죠. 하하. 근데 계속 남아 있다 보면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기 힘들어요. 국립발레단이 외국 발레단처럼 공연이 많지 않거든요. 제가 남아 있다면 그 친구들의 기회를 뺏는 것일 수 있죠. 다른 후배들이 다른 버전의 길을 보여줄 거예요.”

김지영 이후 해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이 부쩍 늘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27)이 대표적인 보기다. “기민씨가 일본으로 공연왔을 때 보러갔는데 너무 잘해 저도 기립박수를 쳤어요. 그런데 가만히 선배들이 생각나는 거예요. 기민씨의 스승인 이원국씨도 계시고, 파리오페라발레에서 고생하신 김용걸 오빠,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인) 신무섭 부감독님, 최태지 단장님, 임성남 선생님(국립발레단 전 단장)까지. 이 발레 불모지를 개척하신 분들이고, 이 짧은 시간에 기민씨 같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잘하는 무용수가 나온 거잖아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과 강수진(52) 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에게도 당연히 감사를 표했다.

“최태지 단장님은 저를 키워주신 분이에요. 그 때는 ‘내가 잘하니까 뽑아준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힘든 결정을 하셨던 거예요. 쟁쟁한 언니들 틈에서 어린 저를 기용하신 거죠. 제가 잘했다기 보다 단장님이 도움을 주신 거죠. 강수진 단장님은 제게 ‘마흔이 되면 춤 추는 것이 편해진다’고 말씀 주셨어요. 당신도 오래도록 춤을 춘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떻게 나가야 할지 조언을 많이 주셨죠.”

그동안 무대에 오르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무대에 올랐어요”라고 돌아봤다. “물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결국 춤에 대한 사랑이 더 컸죠. 춤을 정말 사랑해요. 이유요?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나요? 정말 사랑하면 이유가 없죠.”

어릴 때 김지영은 몸이 약했다. 잘 먹지를 않아 영양실조로 감기에 자주 걸렸다. 성격도 활발하지 않고 소심했다. 언니, 오빠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았다. ‘권법소년’이라는 만화 속 ‘딸기’ 캐릭터에 반해, 태권도 도장에 등록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다.

열 살 때 토슈즈를 신고 달라졌다. 어머니가 서른여섯에 낳은 막내인데 그녀를 뱃속에 가졌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영국 로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봤으니, 결국은 발레를 할 운명이었나. “발레는 정말 외로웠던 제게 친구였어요.”

국립발레단과도 작업한 러시아 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춤은 알게 되면 그만둔다’는 명언을 남겼다. ‘나이가 들수록 춤에 대해 지혜가 쌓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책임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많이 오를수록 무대가 무섭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심해져요”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그것은 ‘정신력 싸움’이다.

“어릴 때는, 제 잘난 맛으로 춤 췄어요. 자신감으로 지금까지 왔죠.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고 하니까 그것이 진짜인 줄 알았죠. 이제는 정말 알게 됐어요. 제 자신의 위치나 저에 대한 진짜 모습을요. 물론 아직도 착각은 있겠지만 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거죠. 거기서 혼란도 느꼈지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이런 발레 철학은 삶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감과 겸손의 밸런스가 중요하더라고요.”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자 머리와 몸이 더 가벼워졌다. 김지영은 연습을 위해 여전히 가벼운 발걸음을 사뿐사뿐 옮겼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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