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요리를 글로 배운 남자, 부엌에서 ‘쓴맛’을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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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줄리언 반스 지음·공진호 옮김/196쪽·1만4500원·다산책방

아버지들이 요리학원을 찾아 앞치마를 두르는 시대, 참으로 적절한 책이 나왔다.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가 부엌의 까칠한 현학자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건 요리에 관해서라면 온 세계의 놀림감이 되는 바로 그 ‘영국’의 대표 작가다.

어려서 부엌과는 거리가 멀었던, 요리를 글로 배운 중년 남성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요리책대로 하면 맛있는 음식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고지식하게 따라하지만 이상하게도 요리는 늘 어딘가 달라 좌절하고 실망한다.

아내와 ‘한 스푼’이라는 표현을 두고 ‘찰랑찰랑’인지 ‘수북이’ 한 스푼인지 논쟁을 벌이고, 요리법의 빠진 부분을 캐묻기 위해 요리책 저자에게 전화했다가 ‘이상한 부분이 없다’며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영국 최고 작가가 주방에서 겪는 굴욕과 영국식 유머가 끊이지 않는다.

저자는 요리책을 사 모으고 책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체득하며 요리에서 인생을 발견해간다. 그가 마침내 깨달은 것처럼 요리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나눠 먹는 일, 그리고 그들과 인생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다. 부엌에서 돋보기 너머로 요리법을 정독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에게 좋은 위로를 전할 책이다. 원제는 ‘The pedant in the kitchen’.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줄리언 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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