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신이시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850년 역사 문화유산 허무하게 무너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6일 2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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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이시여….”

15일 오후 7시 50분(한국 시간 16일 오전 2시 50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93m 높이 첨탑 끝 부분이 불길 속으로 뚝 떨어졌다. 센 강변에서 화재 현장을 바라보던 파리 시민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상당수는 눈물을 흘렸다. 연 1300만 명 관광객이 찾는 850년 역사의 인류 문화유산은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화마와 싸운 9시간

첫 화재 경보가 울린 시각은 15일 오후 6시 20분(한국 시간 16일 오전 1시 20분). 23분 후 다시 경보가 울리면서 본격적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앙드레 피노 대성당 언론 담당자는 현지 언론에 “경고음이 울린 뒤 성당의 높은 곳에서 회색빛 연기구름을 봤다”고 했다. 저녁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약 500명에 이르는 소방관들이 18개의 대형 물 호스를 사용해 물을 뿌렸다. 한 소방관이 중상을 입었다. 큰 불길은 발화 9시간이 지난 16일 오전 3시 30분경 잡혔고 15시간 만인 오전 9시 30분경 완전 진화됐다. 진화 후 로이터 등이 공개한 사진에 드러난 성당 내부 모습은 참혹했다. 천장은 폭격을 당한 듯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벽면은 시커멓게 그을렸다. 장클로드 갈레 파리 소방청장은 “전면부의 두 탑은 불길을 피했지만 대성당 지붕의 3분의 2는 붕괴됐다”고 했다.

프랑크 리에스테르 프랑스 문화장관은 “성당의 또 다른 상징물인 대형 장미모양 스테인드글라스 3개는 안전하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불타버린 성당 내부를 둘러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우리의 성당을 다시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성당에 들어갔을때 탄내가 코를 찔렀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그는 16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고, 내각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성당 재건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 문화유산재단은 성당 재건을 위한 국가 모금에 돌입했고 지방자치단체, 기업, 개인들의 기부도 이어졌다.

●진화를 어렵게 한 비계와 좁은 도로

프랑스 검경은 테러나 방화가 아닌 실화(失火)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16일 대성당 보수 작업을 하던 5개 회사의 인부 탐문 및 현장 조사를 시작한 레미 헤이츠 검사는 “고의로 불을 지른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르피가로 등 현지 언론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첨탑 보수공사를 위해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비계(飛階) 쪽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비계 아래의 핵심 구조물 ‘아치형 나무보’는 12세기에 벌목한 참나무로 만들어져 ‘숲(The Forest)’으로도 불린다. 건물 손상을 우려해 철재가 아닌 나무 비계를 쓴 데다 오래돼 건조해진 보가 불쏘시개가 되어 화재를 키웠다는 의미다. 로랑 누네즈 내무차관은 “건물에 구조적인 취약한 부분이 있었고, 특히 아치형 지붕과 북쪽 상층부에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했다. 소실된 대성당 첨탑은 프랑스어로 ‘플레슈’라고 불린다. 불과 비바람에 취약한 형태인데다 오랜 세월 동안 부식돼 프랑스 정부가 첨탑 개보수를 진행해왔다.

파리 특유의 좁은 도로도 초기 대응을 어렵게 했다. 물을 댈 소방용 호스도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신이 도운 일이란 평가가 나온다.

● “프랑스가 울고 있다”

15일 밤 시청 광장에서 불타는 대성당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민 티보 씨(25)와 앙젤라 씨(23)는 기자에게 “너무 슬퍼 두 시간 째 이렇게 서 있다”며 “모든 프랑스인들은 어려서부터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배운다”고 했다. 시민 오베이 씨는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건물이 사라지다니 정말 슬픈 저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시테섬을 비롯한 센강의 섬 2곳에는 비극적 현장을 보려는 인파가 몰려들어 주변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퐁네프 다리에 서 있던 시민들은 화재 초기에 구조 소방차가 오자 박수와 환호를 지르며 소방관들을 격려했다.

이번 비극은 다음 주말 부활절 직전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리는 가톨릭 성주간에 발생해 침통함을 더했다. 시민들이 찬송가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는 모습을 담은 트위터 동영상은 조회수가 700만 회를 넘었다. 현장에서 마주친 시민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큰 울림을 남겼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노트르담은 파리의 역사 그 전체이며 이번 화재는 전 세계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유물은 대부분 안전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가시면류관 등 성당 내 역사적 유물들도 소실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히 상당수가 무사히 구출됐다.

프랑크 리에스테르 문화장관은 16일 “(주요 유물인) 가시면류관, 루이 9세의 튜닉(그리스로마 시대의 소매없는 의복) 등 성물들은 시청사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화재가 진압되기 전 붕괴 위험을 무릅쓰고 내부로 들어간 소방관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유물들을 안전하게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유물 구조 작업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2015년 11월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일어난 테러 때 시민들을 구조했던 한 성직자가 또다시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낳고 있다.

성당 내부에 있던 대형 회화 작품들도 대체로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리에스테르 장관은 “회화 작품들은 건조 및 복원 작업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톨릭 성물과 예술 작품을 다수 보유해 왔다. 가장 유명한 성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머리에 썼던 가시면류관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와 갈댓잎을 원형으로 엮었다. 원래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었으나 1239년 루이 9세가 사들였고 이후 국가적 보물로 귀하게 보관돼 ‘프랑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당시 이 면류관이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기쁨에 찬 루이 9세가 맨발에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달려 나가 관을 맞이했다는 구문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외 예수의 수난 때 사용된 성(聖)십자가 조각 및 못 등도 보관돼 있으나 구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12사도와 4명의 전도자를 상징하는 16개 동상은 다행히도 화마를 피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대성당 측은 지난주 첨탑 보수 공사의 일환으로 성당 꼭대기를 장식하던 이 동상들을 이동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 중 하나인 대성당 내 오르간도 소실되지 않았다. 그러나 리에스테르 장관은 16일 “오르간도 화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대성당 재건 의지를 밝힌 마크롱 대통령은 “이는 (성당 재건은) 프랑스의 운명이며 향후 수년간 우리가 진행할 프로젝트”라고 했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대성당을 복원하기 위해 프랑스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복원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화재 발생 전인 이달 초 BBC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10년 안에 무너지지 않도록 골조 공사만 진행하더라도 최소 1억5000만 유로(약 1935억 원)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설사 자금을 마련해도 ‘숲(포레스트)’으로 불리는 대성당 천장의 목조 뼈대를 재건하는 일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문화유산 전문가 베르트랑 드 페이도는 16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성당 지붕에 쓰였던 목재는 원시림에서 800년 이상 자란 나무로 만든 것”이라며 “목재 기둥을 만들 큰 나무가 더 이상 프랑스에 없다”고 우려했다. 프랑스 목조 건축자재 기업 샤를루아 그룹은 “지붕 구조물 복구를 위해서는 참나무 약 1300그루가 필요하다”며 “성당 복구에 사용될 정도의 규모의 목재를 확보하려면 여러 해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복원 작업을 위한 성금은 빠르게 모이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으로 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그룹 회장은 16일 2억 유로(약 258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아르노 회장의 경쟁자이자 구치, 생로랑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그룹의 프랑수아앙리 피노 회장도 앞서 1억 유로(약 1290억 원) 기부 의사를 밝혔다. 프랑스 대형 석유업체 토탈 최고경영자(CEO) 파트리크 푸야네도 1억 유로를 쾌척하기로 했다. 프랑스 대표 화장품기업 로레알을 이끄는 베탕쿠르 가문도 2억 유로를 쾌척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AFP통신은 “프랑스 기업들이 약속한 기부 총액이 6억 유로(약 7706억 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온라인을 통한 ‘풀뿌리’ 국제 모금도 활발하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프랑스 헤리티지 소사이어티는 대성당 복원을 위한 기부 사이트를 개설했다. 유명 모금 웹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서 진행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캠페인도 50여 개에 달한다.

이웃 국가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16일 트위터에 “독일은 대성당 복구 작업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 문화유산안전청의 파비오 카라페짜 구투소 청장도 “이탈리아의 문화재 복구 경험을 기초로 대성당 재건을 위해 프랑스 당국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각국 속속 애도…이슬람권 지도자도 동참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제에 프란치스코 교황과 각국 정상도 애도를 표했다.

교황청 대변인은 16일 트위터에 “교황은 프랑스와 가깝게 있다. 프랑스 가톨릭 신자와 파리 시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전 교황청은 “세계 가톨릭의 상징을 파괴한 끔찍한 화재에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 소방관들과 이 극단적 상황을 해결하고자 애쓰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도 16일 “서울대교구 공동체 전체가 소방관과 관계자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소셜미디어에 “누구보다 프랑스 국민의 안타까운 마음이 클 것”이라며 위로했다.

영국 왕실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가 깊이 슬퍼하며 국가적 기념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긴급 요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프랑스와 유럽 문화의 상징에 일어난 끔찍한 일에 큰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로하려다 의도치 않게 프랑스에 불쾌감을 줬다. 그는 화재 직후 트위터에 “공중 살수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썼다. 프랑스 소방당국은 “위에서 물을 쏟아 부으면 그 압력 탓에 목재로 된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고 반박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 “하나의 역사를 잃었을 때 슬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내일의 역사를 위해 강하게 재건하는 것 역시 우리의 본성”이라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슬람권 지도자도 종교를 뛰어넘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도 국가적 문화유산이 파괴된 경험이 있기에 프랑스 국민을 괴롭히는 고통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고 위로했다. 모하마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가 대성당에 친숙하다”고 했고, 팔레스타인 외교부도 “화재에 깊은 유감과 슬픔을 느낀다. 프랑스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파리=동정민특파원 ditto@donga.com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위은지기자 wizi@donga.com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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