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 없다”… 비핵화 추가 조치 선그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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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트럼프-文대통령 동시 압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한미 정상을 동시에 겨눈 메시지를 대거 쏟아냈다. 미국엔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향을 비치면서도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보인 태도는 곤란하다고 경고했고, 문재인 대통령에겐 북-미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그만두라고 했다. 대화는 계속하되 그 내용과 시점은 김 위원장 자신이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대화 재개의 문턱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 얻긴 분명 힘들 것”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좋은 관계를 재차 확인하면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번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 대신 정상회담 재개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내걸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더 이상 제재 해제 요구에 목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민생 관련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5개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약점은 제재’라는 프레임이 실패했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1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만 25차례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을 겨냥해선 “지난번(하노이)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도 남겼다. 하노이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직접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했던 제안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비핵화 조치는 기대하지 말라는 신호로도 읽힌다. 이는 김 위원장의 ‘입’으로 부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앞서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최 부상은 지난달 1일 하노이 결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영변) 핵 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놔본 역사가 없다. 영변 핵 폐기를 해도 유엔 제재 해제는 안 된다고 하니 이 계산법이 어디에 기초한 것인지 혼돈이 온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며 대화 시한도 내걸었다. 연말까지 대화 창구는 열어뒀지만 미국이 북한을 설득할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 문 대통령 겨냥 “중재자 말고 당사자 역할 하라”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선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라”고 말했다. 아울러 “진실로 북남(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의향이라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상 북한과의 입장 통일을 주문한 한미 ‘갈라치기’ 전략이다.

남북 선언을 이행하라고 수차례 강조한 것도 결국 ‘굿 이너프 딜’ 같은 중재안을 들고 북-미 사이를 오가는 문 대통령에게 날린 경고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국은 남조선당국에 ‘속도 조절’을 노골적으로 강박하고 있으며 북남 합의 이행을 대북제재 압박정책에 복종시키려고 책동한다”면서 “(한국은) 그 어떤 난관과 장애가 가로놓여도 민족의 총의가 집약된 북남 선언들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철저히 이행해 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부터 바로 가지라”고 했다.

이번 시정연설로 한미를 동시에 공략한 김 위원장은 14일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고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이 됐음을 알렸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김일성광장에서 13일 개최된 ‘국무위원장 재추대 경축 중앙군중대회’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 동지께서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이며 공화국의 최고 영도자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신 대정치사변을 맞이하여”라고 언급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지훈 기자
#김정은#트럼프#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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