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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문권모]차마 “고생해 봐야 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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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문권모]차마 “고생해 봐야 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입력 2019-04-13 03:00수정 2019-04-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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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경제위기 극복 과정서 피어난 꽃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의 희망으로 열매 맺기를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요즘 노래들도 참 좋지만, IMF 이전 노래들은 참 여유가 넘쳐.’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그룹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뮤직비디오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시기였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부(富)’를 달성했다는 한국 사회는 활기가 넘쳤다. 매일매일이 오월의 햇살 가득한 날이었다. 과거 일본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돈이 물처럼 흐르던 시절, 버블이 터지기 전의 1980년대는 ‘시티팝’이란 새로운 음악 장르를 낳았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와 장비를 투입해 만든 장르였다.

소비와 유행을 주도하던 X세대는 겁 없이 놀았다. ‘일과 이분의 일’ 뮤직비디오 속에서 자유롭고 넉넉하게 나풀거리던 고 김지훈의 빨간 소맷자락처럼. 발칙함과 톡톡 튀는 엉뚱함은 젊음의 자랑스러운 표상이었다. 취업문은 넓었고, 스펙이나 인턴이란 말은 낯선 단어였다. 취업 시즌 학과 사무실에 가면 대기업 원서가 쌓여 있었다.

봄날은 영원하지 않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X세대에게 맑은 날 우박처럼 들이닥쳤다. 취업이 안 되고, 결혼이 미뤄졌으며, 연말 거리의 캐럴은 사라져갔다. 지금 초등학생 아이를 둔 동기생들을 보면 고등학생 딸이 있는 내가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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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는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참 묘하다. 이 위기가 역설적으로 한국 대중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됐으니까. 한류(韓流)는 외환위기의 ‘폐허’에서 피어난 꽃이다. 1990년대 말 문화예술은 소비 차원을 넘어 경제 회생을 위한 ‘미래형 산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환경친화적인 무공해 산업’ ‘무한 복제가 가능해 막대한 초과이윤을 낼 수 있는 산업’으로도 불렸다.

이런 와중에 불굴의 의지로 수년간의 지하실 연습생 생활을 이겨낸 아이돌 그룹과 한국 특유의 ‘칼 군무’, 이전의 영화를 훨씬 뛰어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여성들의 눈시울을 적신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마침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수 1위에 오르며 한국 문화의 글로벌화를 이끌었다. 어느새 문화예술은 명실공히 국가의 주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방탄소년단은 세계 청년들의 추앙을 받는 스타 자리에 올라 있다.

한류의 성공과 함께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다. 청년 실업과 양극화, 노인 빈곤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채널A가 오늘부터 방영하는 새 프로그램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 시사회에 엊그제 다녀왔다. 이 프로그램은 법률회사를 무대로 변호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인턴 생활과 고군분투를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시사회 말미에 감정이 차오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잠깐이지만 방송이 뭔지, 요즘 세상이 어떤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우리가 고생해 봤는데, 너희도 고생해 봐야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된다” 같은 말은 결코 입에 담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당신들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안다.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문화예술의 궁극적 책무는 단순히 시대를 반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희망의 단초를 찾아내는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도 “아름다움(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경제위기가 한류의 씨앗이 됐듯 젊은이들이 겪는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의 희망을 낳는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20대 청춘들 모두 파이팅이다.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mikemoon@donga.com
#imf#x세대#한류#굿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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