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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아메리칸드림’ 뒤엔 쓰레기 취급당한 백인 빈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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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아메리칸드림’ 뒤엔 쓰레기 취급당한 백인 빈민 있었다

정양환 기자 입력 2019-04-13 03:00수정 2019-04-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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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미국 400년 계급사/낸시 아이젠버그 지음·강혜정 옮김/752쪽·3만8000원·살림
가끔 사진은 참 불친절하다. 이 미국 사내가 어떤 심정으로 렌즈 앞에 섰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주로 미국 남부 농촌에 거주하는 극빈층은 인종차별 수준의 계급차별을 겪고 있노라 저자는 고발한다.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백인 쓰레기’ ‘인간 폐기물’ ‘낙오자들’과 같은 호칭이 그들을 따라다닌다. 목조건물에 그려진 성조기가 왠지 을씨년스럽다. 작은 사진은 저자인 낸시 아이젠버그. ⓒshutterstock·살림 제공
“있는 그대로의 미국의 과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옹골찬 유혹이다. 솔직히 이 책은 제목이나 두께가 되게 부담스럽다. 500년 조선사도 헷갈리는데, 다른 나라 4세기가 가당키나 한가. 근데 교과서처럼 외웠던 ‘아메리칸드림’ 이면을 들춰 주겠단다. 어떤 이에겐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성조기가 실은 카스트 버금가는 계급사회의 깃발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그 최하층에서 허덕이는 백인 빈민들이 있다. 바로 책의 원제인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백인 쓰레기)’다.

이 정도면 저자가 미국 주적이 아닐까 싶지만, 아이젠버그는 루이지애나주립대 석좌교수다. 2016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선정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 50인’에도 뽑혔다. 그가 자국의 치부라고도 할 만한 속살을 이토록 가차 없이 헤집는 이유는 뭘까.


“마뜩잖을지 모르지만, 백인 쓰레기는 우리나라 서사에서 중심이 되는 가닥이다. (때로는 보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야말로 미국 사회가 우리가 의식하고 싶지 않은 이웃들에게 부여한, 자꾸 바뀌는 꼬리표에 집착한다는 증거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야’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싫든 좋든, 그들은 우리이며 항상 우리 역사의 본질적인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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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념을 바탕으로 수집한 근거는 놀랍도록 매섭다. 일단 건국신화부터 뒤집었다. 신대륙으로 건너온 조상들은 개척영웅이 아니었다. 영국의 가진 자들은 이익 창출과 거지 퇴출(이것도 상당히 순화한 표현이다)을 위해, 못 가진 이들은 강제노역이나 추방에 떠밀려 아메리카로 왔다. 대서양을 건너왔건만 ‘기회의 땅’은 귀족에게나 허락됐다. 빈자들은 ‘영주관할인(leet-men)’이라 불리며 대지주에게 예속된 처지였다.

저자는 이런 계급 구도가 남북전쟁을 거치고 20세기를 넘기면서도 여전하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더 굳어졌다.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친(親)계급주의 성향을 지녔던 건 넘어가자.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20세기 전후 여러 학자는 우생학을 끌어와 ‘가난은 타고난 기질’ 탓으로 몰고 갔다. 심지어 21세기에도 일부 정치인은 실직을 개인의 나태와 동일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2009년 기준 미국 상위 1%는 소득의 5.2%만 국세와 지방세로 내는 반면에 하위 20%는 10.9%나 내는 기형적 구조는 다 뿌리가 있던 셈이다.

‘알려지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한쪽만 본다며 쉽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법하다. 게다가 강 건너 구경인지라 팍팍 와 닿지 않는 면도 있다. 생소한 지명과 인물이 숱해 가끔 ‘멍 때림’도 유발한다. 하지만 지난 미 대선에서 왜 그가 당선됐는지 어떤 정치서적보다 명쾌히 보여준다. 몇 세대 동안 하수구 취급을 받은 이들에게 ‘주류’는 어느 당, 어떤 공약이었건 위선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반도에 이게 과연 남 일일까. 이미 세찬 바람이 낯짝을 때리건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알려지지 않은 미국 400년 계급사#낸시 아이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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