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낙태죄 ‘헌법불합치’ 유감…개정 논의 적극 참여할 듯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11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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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 소원에 대해 11일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것과 관련, 종교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천주교가 가장 먼저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를 통해 유감을 표했다.

◇종교계 우려, 왜?

1953년 법이 제정된 이래 66년 동안 낙태죄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어져왔다. 특히 낙태죄 위헌청구소송 관련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꾸준히 낙태죄 폐지 반대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이들은 “태아의 독자적인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쳐왔다.

앞서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해 3월22일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100만 천주교 신자들의 서명지를 헌법재판소에 전달했다.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여야 할 남성의 책임을 강화할 것, 모든 임산부모를 적극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해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달 1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청년생명대회’ 등에서 “인간은 수정되는 첫 순간부터 인격적 존재로서 고귀하고 존엄하다”며 가톨릭 교회의 생명수호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낙태죄 폐지 반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종교계는 모자보건법을 들어 ‘자기결정권이 과도하게 제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해왔다.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지자 정부는 1973년 일부를 합법화한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다. 부모가 유전적 질병을 갖고 있거나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심 등의 경우에 낙태를 허용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모자보건법 사유를 넓히려 했다. 하지만 종교계의 벽에 부딪혀 진전은 못했다.

낙태죄 폐지 반대가 여성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는 지적이 일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여성을 위한 배려는 낙태의 합법화가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아니라 낙태로 내몰리는 여러 가지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총연합 등 개신교계 역시 이날 헌재의 판결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낙태죄폐지는 존엄한 인간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장치를 인위적으로 빼앗아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을 남용할 위려가 있어 적극 반대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자 한국 종교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톨릭 나라인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로 임신중지 합법화를 결정한 것이다.

같은 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낙태를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는 것에 비유하며 비판하는 등 가톨릭계가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낙태 합법화의 바람은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국내 일부 진보 종교계 역시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감리여성지도력개발원·기독여민회 등 6개 기독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천주교 주류와 극우 개신교 세력은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정상가족 담론을 내세워 임신중단을 불온하고 불경한 범죄로 낙인찍고 있다”며 “우리는 교회가 여성에게 순응적 인간상을 강요하며 여성을 소유물이나 소모품처럼 대해 온 종교적 관성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존엄하고 평등한 여성의 온전한 삶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낙태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국민으로서 보장되는 기본적 권리를, 개인으로서 침해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살아 있는 존재들의 존엄성을 중시하기 위해 권리가 보장되길 원한다. 국가의 허락이나 처벌, 종교의 용서와 배려도 원치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교계 향후 활동은?

헌재는 낙태죄 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낙태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개선 입법이 없을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개정에 1년반 이상 시간이 남아 있어 그동안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입장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김 대주교는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천주교계는 우선 여성과 태아를 낙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염 추기경은 낙태 합법화의 대안으로 미혼모에 대한 배려 확대, 남성에게도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대한 지원, 성·생명·사랑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강조했다.

허 신부도 최근 낙태죄에 대한 논란으로 태아를 포함한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을 포함한 인권 존중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관련 후속 입법 절차가 신중하게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허 신부는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생명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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