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방안도 없이 서두른 ‘무상교육’… 교육청 “부담 떠넘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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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무상교육’ 정부-교육청 갈등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김승환 전북도교육감(마이크 앞)이 지난달 14일 협의회 사무국에서 다른 시도교육감들과 함께 고교 
무상교육 재원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육감들은 “고교 무상교육이 제2의 누리과정 사태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국가가
 책임지고 예산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뉴스1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김승환 전북도교육감(마이크 앞)이 지난달 14일 협의회 사무국에서 다른 시도교육감들과 함께 고교 무상교육 재원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육감들은 “고교 무상교육이 제2의 누리과정 사태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국가가 책임지고 예산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뉴스1
‘무료로 고등학교 교육을 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고교 무상교육을 놓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간에 불협화음이 나는 이유는 막대한 재원 확보 방안을 둘러싼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고교 무상교육으로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각각 부담해야 할 예산 규모는 연간 약 1조 원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때도 고교 무상교육이 추진됐지만, 결국 재원 문제로 무산됐다.

○ “재원 조달 방식, 합의 안 됐다”


고교 무상교육은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 사회정책’ 교육 분야의 핵심 국정과제다. 당초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취임하면서 이를 1년 앞당겨 올해 2학기 고3 학생부터 단계적 적용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9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발표한 ‘고교 무상교육’ 재원조달 방식에 대해 각 시도교육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올해는 고3 2학기만 무상교육을 하기 때문에 소요 예산이 3856억 원에 그치지만, 2021년 전면 도입 때엔 2조 원이 필요하다.

이날 당정청 회의에서 홍영표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고교 무상교육을 안 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며 “무상교육으로 저소득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 소득이 약 13만 원 인상되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생 자녀 1명을 둔 가구당 연평균 158만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왔다.

정부와 여당은 2020∼2024년 고교 무상교육에 소용되는 예산 중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할 5%를 제외한 나머지를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절반인 47.5%씩 내는 방식에 합의했다. 중앙정부가 감당할 47.5%는 ‘증액교부금’으로 지원한다. 부득이한 수요가 발생할 때 국가예산에서 별도로 교부할 수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한 종류다. 고교 전 학년 시행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정부와 교육청이 각각 9466억 원, 지자체가 1019억 원을 조달해야 한다. 당장 올해 고3 무상교육은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편성해야 한다.

하루 전인 8일까지만 해도 ‘분담률 30%’를 예상했던 시도교육청은 이 같은 발표에 난색을 표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47.5%라니 당황스럽다”며 “당장 올해 고3 2학기 무상교육 지원도 교육부의 교부금을 받아 실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라니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 ‘누리과정 사태’ 재연되나


교육계 안팎에선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두고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격돌했던 2016년의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 사항인 누리과정 예산 확대의 부담을 교육청에 떠넘겨 보육대란이 발생한 것과 유사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최진욱 대변인은 “9일 발표된 고교 무상 교육의 재원조달 방식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합의한 사항이 아니다”며 “법 개정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각 시도교육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취학 아동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재정 교부율을 올리면서까지 국가재정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당정청은 고3부터 시행한다고 하지만, 고1부터 하는 게 맞다. 이런 기조라면 유치원 무상교육까지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일각에서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어 현재 중앙정부가 지방교육청에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도 고교 무상 교육을 할 여력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 ‘특목고 역차별’ 논란도

대선 공약을 성급하게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욕이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특히 2025년 이후 들어갈 재원 마련 대책이 없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증액교부금은 임시적으로 1, 2년을 두고 필요할 때 쓰는 방법”이라며 “무상교육에 증액교부금 방식을 택한 건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를 감안해 고교 무상 교육을 국정과제 계획보다 1년 더 앞당겼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교 무상교육의 대상에선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 재학생이 배제된다. 해당 학교들은 ‘역차별’이라고 반발한다. 총 6만8000여 명에 이르는 외국어고, 자사고 등 특목고 학생을 전부 배제하는 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성기 협성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형평성 측면에서 자사고와 특목고 학생들에게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현재 일반고 학생들이 내는 학비 수준인 50만 원 정도는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조유라·유근형 기자
#무상교육#교육청#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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