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안전 철학’으로 글로벌 항공사 키워… 평창올림픽 유치 뒷받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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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회장 별세 1949∼2019]조양호 회장이 걸어온 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7년 2월 새롭게 도입한 보잉787 항공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왼쪽 사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사진 왼쪽)이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지난해 1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한진그룹 제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7년 2월 새롭게 도입한 보잉787 항공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왼쪽 사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사진 왼쪽)이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지난해 1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한진그룹 제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45년 동안 항공업계에 몸담으며 안전, 인재양성, 서비스 기준을 다시 세운 한국 항공산업의 선구자로 꼽힌다. 2002년 부친이 영면한 뒤 경영권을 두고 형제끼리 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라 물류·항공분야를 이끌며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워냈다.

고인이 회장을 맡은 1999년 이후 대한항공은 매출이 껑충 뛰어 2018년 기준 12조6512억 원으로 취임 이전(1998년 4조5854억 원)보다 3배가량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보유 항공기 대수는 113대에서 166대로 늘었다.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본인과 가족들이 각종 논란 끝에 경영 비리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비판 여론이 커졌다. 최근에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자신의 성과를 외부에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다. 항공산업 선진화를 이룬 공이 여러 가지 논란에 가려진 비운의 경영자”라고 평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장 저평가된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이라고 했다.

○ 안전 강조한 항공 선구자

고인은 25세에 대한항공에 입사해 정비, 자재, 기획, 정보기술(IT), 영업 등 주요 항공 실무 업무를 두루 거쳤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 관련 법규를 줄줄 외울 정도로 전문성이 뛰어났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보고하면 혼쭐이 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조 회장은 특히 안전을 강조했다. 한 번은 안전 관련 실수가 발생하자 임원들을 불러놓고“안전에 있어서는 이익을 생각하지 말라. 절대 원칙을 희생하지 말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가 되기 위한 최소 비행시간은 다른 항공사보다 3배 이상 높은 1000시간이다. 이 기준은 조 회장이 만들었다.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자 자체 소유한 항공기 98대를 판 뒤 다시 임차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해 새로운 기종 27대를 구매하기도 했다. 불황이 끝나면 호황이 올 것으로 본 것이다. 이 조치는 나중에 새로운 노선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 회장은 또 한국 항공업계의 목소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항공업계의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 활동 이력 등으로 인해 대한항공은 올해 IATA 연차총회를 개최하는 주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 기업 뛰어넘은 민간 외교관

조 회장은 1970년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했다. 강원 화천군 소재 육군 제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했고, 11개월 동안 베트남에 파병되기도 했다. 조 회장은 평소 “군복무 3년 동안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이 많이 생겼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조 회장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비롯한 스포츠 외교와 문화 교류를 아낌없이 지원해 온 총수로 꼽힌다. 특히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은 1년 10개월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10명 중 100명을 만나기도 했다. 아프리카 위원을 설득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새 노선을 취항하고, 미주 국가들과는 항공기 구매 협력을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확정된 뒤 2014년엔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5월 사퇴했지만 조직위원회에 파견한 대한항공 직원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파견 직원들에게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올림픽 성공을 위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날 조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듣고 “조직위원장 재임 시에 고인의 헌신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애도했다.

○ ‘갑질 논란’ 얼룩진 마지막 5년

하지만 말년은 불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이 경영난에 직면하자 고인은 2013년 구원투수로 나서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지만 2017년 결국 청산 수순을 밟았다.

2014년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지난해엔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건’ 논란이 불거졌고, 아내의 ‘갑질’ 논란까지 연거푸 터지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지난달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20년 만에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변종국 bjk@donga.com·김현수 기자
#조양호 한진회장 별세#대한항공#평창올림픽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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