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정은]조 바이든의 나쁜 손 논란… 개인공간 보호는 어디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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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요즘 워싱턴 정가는 이른바 ‘징그러운 조(Creepy Joe)’ 사건으로 시끄럽다. 지난 주말 주요 뉴스 방송의 각종 패널 토론에서도 주요 이슈였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뒤에서 목을 만지고, 머리에 키스하려 했다거나 얼굴에 코를 비벼댔다는 여성들의 폭로가 일파만파로 번지는 분위기다.

유튜브에는 그가 주변 여성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동영상들이 줄지어 업로드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징그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희화화하는 각종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포옹할 때 허리보다는 겨드랑이 쪽에 더 가깝게 끼워 넣은 손을 16초나 유지하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권력 2인자인 부통령의 공개 제스처라는 이유로 당시 무심히 지나쳤던 영상들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2020 대선의 유력한 잠룡이다. 아직 정식 출마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베토 오로크, 버니 샌더스와 함께 ‘비보이(B-boy)’ 3인방으로 꼽히며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정치 인사다. 이런 그에게 ‘징그러운 조’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민주당 내부는 쑥대밭이 됐다. 당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여성 후보만 벌써 6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미투 운동의 바람까지 거세지면서 선거 판도가 벌써 휘청하는 분위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부적절한 대응도 논란을 키웠다. 사과 없이 유감 표명에 그친 성의 없는 동영상이 그랬거니와 이틀 만에 자신의 ‘나쁜 손’ 논란으로 공개 석상에서 농담한 것이 여성들을 자극했다.

진행 중인 논쟁 가운데 눈길이 가는 부분은 이를 성희롱 혹은 성추행이 아닌 ‘개인 공간의 침해’ 관점에서 보는 시선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올해 77세인 바이든을 옹호하며 “옛날에는 친근감을 그런 식으로 표시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비판과 옹호는 세대에 따라 갈리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부적절한 행위를 가장 먼저 폭로한 루시 플로레스도 이를 성추행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의도와는 별개로 그 행위의 결과가 불쾌하고 부적절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라며 “정말 심각한 성추행이 아닌 이런 (애매한) 행동들이 여성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공론화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그가 인터뷰 말미에 던진 핵심 메시지였다. 실제 그의 폭로 이후 전개되는 논의들이 성추행을 둘러싼 진실게임을 넘어 정치판에서 약자이기 쉬운 여성의 존중, 이성(異性)의 개인 공간 보호 등을 포괄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앞에 성(性)이 붙든 안 붙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면 그건 부적절한 거다. 특히 이성이면 사적인 공간과 거리를 인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재계, 학계 인사들의 성추문 의혹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도 다시 한번 새겨볼 부분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워싱턴 정가#조 바이든#나쁜 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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