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국내 번역 출간한 日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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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살인 대신 치유와 위로를”

미나토 가나에 작가는 가족 동반 등산 예찬론자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등산을 했다. 이 덕분에 말 안 듣는 사춘기 때도 나란히 산에 오르며 대화할 수 있었다”며 추천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미나토 가나에 작가는 가족 동반 등산 예찬론자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등산을 했다. 이 덕분에 말 안 듣는 사춘기 때도 나란히 산에 오르며 대화할 수 있었다”며 추천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번 소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아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학생에게 복수하는 교사(‘고백’),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벌어진 가족 살인(‘야행관람차’)…. 일본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湊かなえ·46)의 책을 읽다 보면 괜히 죄지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이 드러내는 질투 분노 원망 같은 어두운 감정에 붙들린 기억이 떠올라서다. 그래서일까. 그의 별명은 ‘이야마스(부정적 감정을 유발한다는 뜻)의 여왕’이다.》

하지만 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작가는 지난달 31일 국내에 번역·출간한 ‘여자들의 등산일기’(비채·사진)는 “여타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고 소개했다. 실제로도 이야마스와 거리가 멀다. 살인이나 복수, 속죄 대신 치유와 성장, 연대를 내세웠다. 그는 “부엌 구석이나 좁다란 복도에서 스릴러를 쓰다 보면 빛이 절실한 순간이 온다”며 “그럴 때마다 산에 오르는데, 2012년쯤 딸과 등산하면서 이 소설의 뼈대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TV 뉴스에서 산에 오르는 젊은 여성을 뜻하는 ‘마운틴 걸’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한데 막상 산에 오르니 여성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10년 만에 마주한 산에 제 가슴은 여전히 쿵쾅댔고, 어린 딸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힘찼죠. 이런 단상들이 ‘산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성장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책에는 8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뒤틀린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랑으로 인한 고통. 주인공들은 묵묵히 산을 오르며 외면했던 문제와 찬찬히 마주한다. 어린 딸과 로프로 몸을 묶고 산을 내려오는 장면은 작가의 경험담이다. 그는 “여성을 어리고 약하게 지칭한 ‘마운틴 걸’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은 남성 이미지가 강한데, 그들이 만든 틀과 용어에 자신을 가둘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침 이날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이 인쇄 부수 13만 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죠. 아쉽게도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일본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개인이 느낀 문제들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이 생겼지만, 아직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지진 못했죠. 책이라는 도구로 마음을 잇는 한국의 문화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의…’에는 일본의 명산 8곳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묘코산, 히우치산, 리시리산, 긴토키산 등이다. 모두 작가가 직접 다녀왔다.

2010년 일본에서 개봉한 뒤 이듬해 국내에서도 선보인 일본 영화 ‘고백’의 한 장면. ‘속죄’ ‘야행관람차’ 등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상당수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미로비젼 제공
2010년 일본에서 개봉한 뒤 이듬해 국내에서도 선보인 일본 영화 ‘고백’의 한 장면. ‘속죄’ ‘야행관람차’ 등 미나토 가나에의 작
품은 상당수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미로비젼 제공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데뷔했다. 2008년 내놓은 데뷔작 ‘고백’(2009년 국내 출간)은 일본 열도를 뒤흔들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 허를 찌르는 서사와 인간관계의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스릴러가 전매특허. 그는 “작품을 쓸 때 내면의 나쁜 것들을 확장해 불러낸다”며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그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심연을 세밀하게 묘파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빙점’이 인생 책이에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미스터리의 문을 열어준 작품이죠. 대다수가 모른 척하는 민감한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미나토 가나에#여자들의 등산일기#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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