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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청와대 낙하산에 침묵하는 종이호랑이 금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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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청와대 낙하산에 침묵하는 종이호랑이 금감원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입력 2019-04-03 03:00수정 2019-04-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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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차장
최근 금융감독원은 같은 건으로 3번의 보도해명자료를 쏟아냈다. 해명 내용도 매번 동일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인사들의 금융권 취업과 관련해 질문을 받은 바 없고 답변한 사실도 없다.’

윤 원장은 지난달 14일 간담회에서 “금융 경력이 없는 분들이 금융사 임원으로 내려오는데 이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누가 봐도 청와대 행정관 출신으로 각각 메리츠금융 상무, 유암코(구조조정 전문기관) 상임감사에 내정된 한정원, 황현선 씨를 지칭한 것이었다. 윤 원장은 이에 “임원의 적격성은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뒤 단상에서 내려와 몇 마디를 더 했다고 한다. 이를 언론들이 ‘금감원장이 낙하산 인사에 쓴소리를 했다’며 보도하자 뒤늦게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질문인 줄 몰랐다는 식으로 발을 뺀 것이다.

얼핏 보면 무슨 진실게임이라도 시작된 것 같은 양상이다. 윤 원장의 발언이 실제 금감원 주장대로 엉뚱하게 곡해됐을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론부터 말하면 굳이 사실관계를 다툴 필요도 없는 문제다. 금융시장과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금감원장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기도 전에 최근 금융권의 ‘정치 낙하산’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정원, 황현선 씨는 금융권이나 구조조정 분야 근무 경험이 없다. 그런데도 임기가 보장된 연봉 수억 원대의 자리를 단번에 꿰차고, 호랑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금감원장에게 입마개를 채워 버렸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 발언을 수도 없이 쏟아냈다. 그는 본보 등을 통해 “낙하산 의혹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도 당국이 부인으로 일관한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 “낙하산은 직원 사기를 떨어뜨리고 금융업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자문기관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를 이끌었을 때도 낙하산을 견제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권고했다. 금감원은 얼마 전만 해도 대형 은행의 사외이사들을 소집해 가며 현직 행장의 연임을 저지하는 파워를 과시했다. 지금은 그보다 급수가 한참 낮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청와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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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과거에도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을 찍어내고, 친정부 성향 인사를 그 자리에 꽂아 넣는 역할을 해왔다. 예전 취재 노트를 꺼내 펼쳐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금융계 인사 구태(舊態)는 두말하면 입 아플 수준이다. 그런 패악(悖惡)을 바로잡겠다며 출범한 이 정부가 지난 정권의 인사 농단과 전혀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자신들이 점찍어 놓은 인사가 공공기관 임원 선발에서 탈락하자 공모 자체를 무산시켜 버리고 담당부처 관료들을 불러다 질책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내정된 인물에겐 면접 정보를 미리 알려준 정황도 나왔다. 그러고도 이 정부 사람들은 지난 정부는 더 심했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한다.

그날 간담회에서 안 나왔다는 질문을 이 글을 통해 윤 원장에게 다시 한다. 한정원, 황현선 씨는 무자격 낙하산인가, 아닌가. 해명자료는 더 원치 않는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청와대 낙하산#금융감독원#윤석헌 금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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