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대표하는 광화문 광장…강남 대표 광장은 어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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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을 대표하는 광장은 광화문 광장이다. 그러면 강남을 대표하는 광장은 어디일까. 지하상가와 교보문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강남역, 코엑스몰과 별마당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은 삼성역을 꼽을 것이다. 롯데월드와 초고층 마천루를 좋아하는 사람은 잠실역이라고 할 테다. 세 곳 모두 강남을 대표하는 장소이지만,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서울지하철 2호선 역을 중심으로 한 지하광장이지, 지상광장은 아니다.

서울플랜2030에 따르면 앞으로 서울은 1도심(구도심, 한양 도성) 체제에서 3도심 체제로 바뀐다. 3도심은 구도심, 영등포, 강남이다. GTX 역이 들어올 삼성역은 기존 코엑스와 현대차의 초고층 마천루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를 연결하는 지상 시민광장이 들어선다. 공원이 부족한 강남 일대에 뉴욕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파크에 버금가는 소중한 도심 지상 녹지 광장을 선보일 계획이다. 영동대로 700m 구간(삼성역~봉은사역)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사방 100m 정사각형이 3개가 붙는 폭 100m, 길이 300m 지상 광장이 들어선다. 국제 공모전을 통해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정림건축 컨소시엄) 안이 당선됐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아이엠 페이와 더불어 페로는 ‘투명사회’ ‘소통사회’ ‘문화사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 눈에 들어 새로운 파리를 열었다. 페이가 유리 피라미드로 새로운 국립 루브르박물관을 선보였다면, 페로는 유리 타워의 국립 도서관을 보여줬다. 유리 미니멀리즘은 21세기형 시민 중심 파리 공공 광장과 공공 건축을 리드했다. 파리 도서관을 위해 페로는 4개의 ‘L’ 자형 유리 타워를 직사각형 대지 코너에 세웠고, 중앙은 비워 조경을 뒀다. 도서관 프로그램은 조경 아래 중층구조를 이루며 펼쳐졌다.

한국에서도 페로는 완성도 높은 이화여대 ECC 완공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화여대 입구에 들어서면 바닥이 열리며 광장은 지하로 내려가고 건축은 지상으로 올라간다. 마치 풍선처럼 땅이 누른 부분만큼 건물이 양 옆으로 부풀어 올라 인공 협곡 같은 모양이다. ECC는 캠퍼스 내 강력한 축을 형성하며 이화여대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ECC의 백미는 인공 협곡 양쪽에서 유리를 붙잡아주고 있는 은색 철 틀이다. 페로는 이 틀을 내부에 두지 않고, 외부에 두어 구조재로 머무를 수 있는 유리 틀을 장식재와 효과재로 활용했다. 그 결과, 낮에는 이 수직 실버 루버들 모서리에서 태양이 은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밤에는 내부 조명이 미끌미끌 번지며 광장을 밝힌다. 또한 재잘재잘 떠들며 걷는 학생들의 모습을 반사하는데, 수직 유리 틀이 자주 반복돼 반사상이 흐른다. 뉴욕 컬럼비아대 건축학과 교수이자 전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 건축과 디렉터였던 베리 버그덜 교수는 ECC에 크게 감동했다. 그는 페로에게서 ECC 건축모형을 받아 모마 영구 콜렉션으로 가져갔다.

페로가 영동대로 광장 국제 공모전에 지은 이름은 ‘라이트 워크(Light Walk)’다. 파리 국립도서관과 ECC를 잇는 페로의 건축 철학이 라이트 워크에서 흐른다. 조경과 하나 된 건축, 예술과 하나 된 광장이다. 300m 길이 광장의 중앙에 폭 10m의 유리 큐브(Light Beam)가 가로지른다. 유리 큐브의 단순한 평면 구성은 단면에서 다이내믹해진다.

페로는 긴 유리큐브를 남북 방향으로 기울였다. 광장 중앙 부분은 높고, 끝단은 낮아진다. 지상층에서 시작하는 유리큐브는 지하 3층까지 내려간다. 지하 코엑스몰과 새로 지어질 GBC 지하가 손잡는 지점에서 유리큐브가 푸른 서울 하늘을 지하 깊숙이 끌어온다. 저녁에는 지하에서 뿜어 나오는 인공조명이 광장의 종축을 ‘빛의 큐브’로 밝힌다.

물론 의문점도 있다. 첫째는 지상 프로그램이다. 영동대로의 오랜 난제 중 하나는 지하공간이 코엑스몰로 살아 있는 반면 지상은 적막하다는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멀고, 건물의 덩치는 비대한데 이를 살리는 지상층 프로그램이 없다. 새로 짓는 영동대로 광장이 휑하지 않으려면 광장 경계에 어떤 시민 참여유도형 프로그램을 접속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는 광장 유리큐브에 미칠 서울의 대기 조건이다. 봄마다 찾아오는 황사와 요새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가 유리큐브의 투명함을 더럽히지는 않을까. 지하화한 영동대로에서 자동차 매연이 뿜어져 나올 텐데 페로의 유리큐브가 ‘더스트 프리(먼지 없는)’ 존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유리를 메탈로 바꾸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다만 분기마다 물청소를 해야 하는 유리큐브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페로의 영동대로 광장이 완공되면 강남은 서울의 새로운 도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또한 라이트 워크는 도심 공원이 부족한 강남에 새로운 녹지광장을 선사할 것이다. 강남을 대표하는 시민광장이자 녹지광장, 공공광장의 첫 시도다. 완공이 기대되고 성공이 기대되는 이유다. 라이트 워크는 강남의 빛나는 발걸음이자, 가벼운 발걸음이다.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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