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음식 쓰레기에 ‘공공의 적’ 문구까지…원룸촌은 전쟁 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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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원룸 앞에 먹다 남긴 배달음식이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아닌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긴 채 버려져 있다. 김민찬기자 goeasy@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원룸 앞에 먹다 남긴 배달음식이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아닌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긴 채 버려져 있다. 김민찬기자 goeasy@donga.com

서울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2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A 씨(64)는 경비 일 외에도 주요 업무가 또 있다.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는 것이다. 250세대가 거주하는 이 오피스텔에선 입주민들이 먹다 남은 배달음식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분리하다 보면 짜장면이나 국물이 흐르는 떡볶이 등 먹다 남긴 배달음식을 용기에 담긴 채로 버린 경우도 있다. 구청은 이렇게 쓰레기 분리 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물주에게 ‘청결 이행 명령’을 내린다. A 씨는 일반 쓰레기봉투에서 가려낸 배달음식 쓰레기에 ‘공공의 적’이라는 경고성 문구를 써 입주민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둬보기도 했다. 또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입주민을 기억해 뒀다가 직접 주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A 씨는 “매일 배달음식 쓰레기와 전쟁”이라고 말했다.

배달음식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많다. 배달음식을 자주 이용하는 1인 가구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많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인 가구 증가로 배달음식 이용자들이 늘면서 2018년 1월 한 달에만 배달 어플리케이션(앱) 이용 건수가 650만 회를 넘었다. 2000년 전체 가구의 15.5%이던 1인 가구 비율은 2017년 28.6%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본보가 지난달 30, 31일 이틀간 1인 가구가 많은 관악구 일대 원룸과 오피스텔 지역을 둘러본 결과 먹다 남긴 배달음식 쓰레기를 담아 버린 일반 쓰레기봉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피자와 피클, 핫소스, 치킨, 도시락 반찬 등이 담긴 쓰레기봉투들로 악취를 풍기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관악구 청룡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B 씨(78)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2시간 이상은 일반 쓰레기봉투에서 배달음식을 쓰레기를 골라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라는 경고문구를 써 붙여 놓은 배달음식 쓰레기. 김민찬기자 goeasy@donga.com
(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라는 경고문구를 써 붙여 놓은 배달음식 쓰레기. 김민찬기자 goeasy@donga.com

지난해 서울 용산구에서는 배달음식 쓰레기를 담아 버린 검정색 일반 비닐봉투에 다른 집 신문요금 청구서를 넣어 둔 경우도 있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과태료 부과를 피하기 위한 꼼수다. 용산구 보광동에 거주하는 조모 씨(26)는 지난해 8월 구청으로부터 ‘과태료 20만 원을 납부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쓰지 않아 과태료 10만 원, 음식물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하지 않아 과태료 10만 원을 각각 부과 받은 것이다. 배달음식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투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신문요금 청구서가 나온 것이다. 평소 분리수거를 철저히 했던 조 씨는 “남의 고지서를 가져다가 대신 넣어놓고 무단 투기하는 사람한테 당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관악구 봉천동에서 원룸텔을 운영하는 최모 씨(51·여)는 아예 60여 명의 입주민들에게 일반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지 말고 지정한 장소에 내놓기만 하라고 당부한 경우다. 어차피 배달음식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해 내놓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신이 쓰레기를 분류하기 위해서다. 최 씨는 “일반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등을 구분해 버리지 않는 입주민들이 많아 내가 직접 분류한다”며 “입주민들은 길어봤자 1년 정도 살고 나가다보니 주인의식이 없고 분리수거를 잘 안 해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라고 했다.

김민찬기자 go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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