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예약 ‘제로’… 분만실 옆 산모병실은 일반환자 차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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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짙어지는 ‘저출산의 그늘’

텅텅 빈 산모병실 28일 서울 중구 여성전문 제일병원 모아센터의 병실이 텅텅 비어 있다. 제일병원 
모아센터는 저출산 여파 등으로 지난해 말부터 진료를 중단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 ‘0명대’ 출산율의 
충격이 전국 분만병원에 미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텅텅 빈 산모병실 28일 서울 중구 여성전문 제일병원 모아센터의 병실이 텅텅 비어 있다. 제일병원 모아센터는 저출산 여파 등으로 지난해 말부터 진료를 중단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 ‘0명대’ 출산율의 충격이 전국 분만병원에 미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신생아실엔 신생아용 플라스틱 침대 2개가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은 듯 전기난로와 함께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분만실 옆 병실은 허리디스크를 앓는 60대 남성 환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 임신부 몫이지만 4월까지 분만 예약이 한 건도 없어 일반 환자용으로 쓰고 있다. 2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충북 영동군의 유일한 분만병원인 영동병원 풍경이다. 이날 2층 산부인과 병동에는 임신부가 한 명도 찾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는 “요즘 애를 안 낳잖아요. 늘 썰렁하지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영동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2명에 불과하다. 산부인과가 휴업 상태나 다름없으니 다른 육아 인프라도 덩달아 후퇴하고 있다. 영동군엔 산후조리원이 한 곳도 없다. 소아과만을 전담하는 의원도 3곳에 불과하다. 이날 오전 문을 연 키즈카페도 1곳뿐이었다. 영동군에 살지만 지난해 8월 둘째 아이를 대전에서 ‘원정 출산’한 이모 씨(37·여)는 “문화센터라도 있으면 좋겠다”라며 아쉬워했다.

○ 서울 유명 분만병원도 ‘폐원 공포’

지난해 ‘0명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의 충격이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을 뒤흔들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출생아를 한 명이라도 받은 분만병원은 2013년 706곳에서 2017년 528곳으로 급감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32만6900명이었던 한 해 출생아 수가 2021년 29만 명, 2067년 21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산부인과가 줄어들고, 주변에 산부인과가 없으니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출산 파업의 악순환’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저출산의 충격은 지방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 첫 여성전문병원인 서울 중구 제일병원은 지난해 말 진료를 중단했다. 27일 취재팀이 찾은 제일병원 산부인과 병동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일부 병동과 분만실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제일병원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문모 씨(74)는 “하루 1500장 정도 들어오던 처방전이 제일병원 폐원 이후 150장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유명 분만병원도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병상이 55개로 지역 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인 서울 G여성병원은 임신부를 ‘유치’하기 위해 분만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분만료 덤핑’ 행사를 벌이다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태아를 한 달 평균 250여 명을 받다가 지난해부터 그 수가 절반으로 줄자 궁여지책을 쓰다가 적발된 것이다.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9월 적자로 폐업한 뒤 G여성병원 인근 산후조리원에 취업한 조모 씨는 “여기도 산모가 줄어 월급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정재 교수는 “출생아가 줄어도 분만실 유지에 필요한 인건비와 시설비는 똑같이 든다”며 “분만실은 꼭 필요한 공공 의료시설인 만큼 정부가 필수 분만실을 지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출산에 어린이집도 직격탄


27일 서울 영등포구 A어린이집에선 아이 2명만이 텅 빈 놀이방에서 장난감 ‘레고’의 초록색 바닥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다른 교구와 장난감은 전부 처분한 상태였다. 이 어린이집은 31일 폐원할 예정이다. 지난달부터 운영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연장했음에도 등록 아동은 정원(20명)에 크게 못 미치는 4명에 그쳤다. 원장 김영혜 씨(63·여)를 포함한 보육교사 4명이 아이를 일대일로 돌보는 상황에서 더 이상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은 ‘저출산 쓰나미’가 가장 먼저 덮치는 분야 중 하나다. 2013년 4만3770곳이었던 전국 어린이집은 5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3만9171곳으로 줄었다. A어린이집처럼 영아를 주로 돌보는 가정 어린이집과 소규모 민간 어린이집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서울 구로구 B어린이집도 같은 형편이다. 1년 만에 원아가 절반으로 줄어 일부 보육교사를 내보내야 했다. 원장 C 씨는 “직원도 불안해하고 사기도 떨어져서 앞으로 얼마나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영동=송혜미 1am@donga.com / 사지원·조건희 기자
#저출산#인구절벽#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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