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우리 사회는 아동을 존중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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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울면 여기저기 불편한 시선… 편의시설은 철저히 어른 눈높이
누구나 어릴 땐 울고 시끄러웠는데 어른 되면 까맣게 잊고 적대적 태도
아이도 존엄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아기가 운다. 탑승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불편하다. 보호자에게 매달려 서럽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아기가 탑승한 것을 발견한 순간부터 흘끔거린 사람들이 불편하다. 아기가 큰 소리를 딱 내자마자, 애가 있으니 저럴 줄 알았다는 듯이 ‘큼큼’ 괜히 목청 가다듬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주변을 살피며 몇 번이고 아기를 조용히 시키려 애쓰는 보호자와, 이 가차 없음이 허용되는 세상이 불편하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대단히 적대적이다.

출생률 저하니 인구절벽이니 한다. 학교 밀집지역이나 대규모 주거단지가 아니면 아이들을 보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아이가 줄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이것이 정말, 단지 아이들의 수가 줄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14세 미만 인구는 670만 명이다. 65세 이상 인구는 700만 명이다. 양쪽 다 활동력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는 연령대라는 점까지 아울러 고려하면, 적어도 노인이 보이는 만큼 어린이도 보여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장소에는 기이할 만큼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없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적대적인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은 원래 시끄럽다. 필요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법, 성량을 조절하는 법 등은 아이들이 원래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배워 나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존재하고, 더욱이 이 모든 과제는 한 번에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못 배우기도 하는 어려운 과제다. 소위 공룡소리, 돌고래소리를 포함한 아이들의 시끄러움은 성장 중인 생명이 갖는 속성이지, 그들이 야기하는 피해가 아니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작고 약하다. 우리나라에는 무(無)장애 혹은 배리어 프리(휠체어를 탄 장애인, 노인이 건물을 편하게 이용하도록 계단 등 장애물을 최소화한다는 뜻) 시설물이 많지 않다. 표준 신장과 체구의 성인이라면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그 기준에 조금만 어긋나도 이용하기가 상당히 불편한 시설이 아주 많다. 너무 높거나 너무 크거나 너무 넓다. 층계가 너무 높다. 버튼이 너무 멀다. 손잡이에 손이 닿지 않는다. 시설을 이동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가 아동의 체력에 비해 너무 길다. 신호가 너무 짧다. 당장 버스나 기차에 있는 단 두 칸의 계단도 혼자 힘으로 오르내릴 수 없는 높이다.

이처럼 모든 시설이 비(非)장애 성인에게 맞춰져 있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길을 막거나 힘들어하거나 헤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지 않도록 편의시설을 만드는 것은 대단한 ‘호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다. 시설이 정비되면 모두에게 좋겠지만 하드웨어를 아직 다 마련하지 못했다면 소프트웨어인 사람들이, 특히 성인이 일단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나보다 더 약하고 작고 이용을 어려워하고 다치기 쉬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요전에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보호자 없이 지하철을 탄 초등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아이는 어른들에게 완전히 파묻혀 머리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몸을 밀어 길을 내어 주는 어른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 번 외출할 때마다 수많은 적대적인 시선을 만나며 불편하게 다녀야 한다면, 당연히 밖에 잘 나오지 못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은 신체 장애인을 길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것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과 아이를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 아이는 사람이다. 아이는 작고 아직 자라는 중이고 보건, 위생, 건강의 모든 면에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약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아이나 아이의 보호자가 낯선 어른의 일방적인 호의나 접근을 거부한다고 불쾌해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나 보호자에게는 성인의 접근이나 호의에 응답할 의무가 없다. 귀여워하기보다는 존중해야 한다. 예뻐하기보다는 친절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듯이, 조심해야 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아동#편의시설#아기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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