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태훈]이래서 미세먼지 줄이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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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올 1, 3월 최악의 미세먼지로 한국은 몸살을 앓았지만 이웃 일본은 대기 상태가 좋았다. 요즘 일본은 공기가 맑다 보니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도쿄 도심에서 약 100km 떨어진 후지산도 잘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도쿄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가 강력한 경유차 퇴출 정책을 시행하기 전까지는 시민들이 뿌연 공기 속에서 고통을 받았다. 이시하라 지사는 당선 직후인 2000년 2월 경유차에서 배출된 그을음을 담은 페트병을 들고 기자회견장에 나와 “이런 미세먼지가 도쿄에서만 하루에 12만 병이 나온다”며 국가와 싸워서라도 경유차를 몰아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을음이 가득 든 페트병을 들고 다니며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렸고, 자동차 제조업체와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경유차 NO 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그 결과 2001년부터 10년 동안 도쿄의 초미세먼지는 55% 감소했다.

도쿄의 공기질 개선 사례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다. 가장 중요하게는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확 도려내는 과감한 처방이 아닐까 싶다.

그간의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세먼지는 중국 영향이 압도적이다. 고농도 때 중국의 영향이 60∼80%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 환경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취해야 할 최우선 정책은 중국의 미세먼지 저감에 맞추는 것이 상식이다. 중국 정부가 미세먼지 책임을 인정하고 전면적인 대책을 세우도록 객관적인 근거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강력하게 항의하고 압박할 필요가 있다. 주요 교역국과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은 가급적 피해야 하겠지만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중차대한 사안에서는 국가 간 갈등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6일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다음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문 대통령의 말을 뭉개는 것처럼 비쳤다. 그것도 국장급밖에 안 되는 외교부 관리가 우리 대통령의 말을 즉각 맞받아치듯이 말이다. 우리 국민들로선 중국이 한국을 말랑하게 보고 있거나 하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중국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유감을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입장 표명이나 조치는 없었다.

미세먼지 국내 요인은 공장과 발전소, 경유차가 핵심 배출원으로 확인돼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3가지 배출원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감축 방안을 집중적으로 마련해 시행해 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규제가 단속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당장 쉽지 않다면 경유차 퇴출과 석탄발전소 감축은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바로 할 수 있는 대안들이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효과가 제한적인 대책을 주로 내놓았다. 비상저감조치 때 운행 제한 차량을 배기가스 5등급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고농도일 때 가동률을 최대 80%로 제한하는 석탄발전소 대상을 현행 40기에서 60기로 늘리는 정도에 그쳤다. 획기적인 저감 대책은 빠져 있어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최근 미세먼지 최악의 상황에서 근본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인공강우 실험 등 이벤트에 치중한 듯한 인상을 줬다. 성난 민심에 정부가 마음이 급하겠지만 그럴수록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도쿄의 성공 사례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
#미세먼지#비상저감조치#중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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