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구제불능 내 인생, 조금씩 나아지는 중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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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고바야시 에리코 지음·한진아 옮김/236쪽·1만5000원·페이퍼타이거

에리코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주위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도 있었을 게다. 20대 초반 여성이 기껏 한다는 일이 에로만화 편집자. 힘든 일만 있으면 엄마에게 쌍심지. 급기야 자살 미수까지. 겨우 살아났지만 재취업은 물 건너가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하다가 또 목숨을 끊으려 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아마 이렇게 ‘동전의 한쪽 면’만 보면 그리 정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동전을 뒤집어보자.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학창시절 지속된 집단따돌림. 겨우 취직한 직장은 월급이 고작 12만 엔(약 122만 원). 숱한 야근과 가욋일에도 추가 수당도 없다. 지병이던 우울증은 점점 깊어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심정이 이해가 간다.

실은 이해한단 말도 에리코에겐 조심스럽다.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아보려던 그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병력과 자살 시도는 자립할 기회를 박탈한다. 치료와 위안을 위해 찾은 클리닉센터는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여긴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대하는 공무원들은 왜 그리 야멸치고 냉랭한지. 갈수록 심장이 쪼그라드는 에리코는 인생이란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지고만 싶다.

짐작했겠지만, 다행히 그는 ‘회복’하고 있다. 다시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봉사단체에서 일하며 세상이란 문을 노크했다. 작지만 소중한 월급봉투를 쥐고 친구에게 점심을 먹자고 전화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서글프다. 에리코는 10여 년에 걸친 여정 끝에 어렵사리 일어섰지만,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상당수는 무너져 내리니까. 아마 그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가 아닐까.

‘이 지옥을…’은 참 먹먹한 책이다. 담담한 문장 속에 절망이 빼곡하다. 차이는 있겠지만, 갈수록 팍팍한 삶에 힘겨워하는 청춘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흥미로운 건, 후반부에 에리코의 말투가 달라진단 점이다. 마치 딴 사람처럼 주장과 의견을 쏟아낸다. 결이 좀 안 맞긴 한데,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았을까 싶다. 그래서 더욱, 더 많은 목소리가 울리는 세상이 돼야 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고바야시 에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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