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동영상 어디 없나”… 일그러진 남성문화 또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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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상품화’ 죄의식 없는 한국사회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서 보려고 했는데 그건 못 구하겠더라.”

동국대 경주캠퍼스 시간강사 A 씨는 16일 자신의 교양수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가수 정준영 씨(30)가 불법 촬영 성관계 동영상을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 등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유포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난 이틀 뒤였다. 학생들은 “몰카 범죄에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했다. 동국대는 18일 A 강사를 해촉했다. 19일 서강대에서는 이 대학 B 교수가 강의 도중 “친구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보라’며 버닝썬 무삭제 영상을 보내주더라. 몰래 보려고 버스를 안 타고 택시를 탔다”고 말했다는 비판 대자보가 붙었다.

○ ‘정준영 동영상’ 좌표 달라는 사람들

정 씨가 상대 여성의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을 찍어 유포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이른바 ‘정준영 동영상’은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승리’, ‘정준영 동영상’ 등의 제목으로 대화방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일부 남성들은 ‘정준영 동영상 좌표 좀 찍어달라’며 노골적으로 불법 동영상 공유를 요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여성 연예인의 얼굴과 불법 촬영물이 합성된 동영상이 퍼지기까지 했다.

또 ‘정준영 동영상’에 등장하는 피해자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허위 정보들이 SNS를 타고 무분별하게 확산됐다. 동영상과 무관한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까지 ‘지라시(사설 정보지)’에 담겨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여기에 거론된 여성 연예인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따로 입장을 발표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몰렸다. 일부 소속사는 “악성 소문 배포자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 “불법 촬영물 시청도 가해 행위”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불법 촬영물을 시청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불법 촬영을 하거나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경우에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법 촬영물을 단순 시청하는 행위도 성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국장은 “불법촬영물 시청은 ‘2차 가해’가 아닌 ‘새로운 가해’”라며 “몰카는 소비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비까지 가해 세트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불법 촬영물을 시청하는 행위 자체가 피해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불법적 속성이 있다”며 “그런 영상을 보는 게 정당화될 경우 피해 여성들은 누군가 언제든 내 몸을 몰래 보고 있다는 일상적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 촬영 및 유포된 동영상을 찾아다니고 돌려 보는 건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고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잘못된 남성 문화의 결과라는 지적도 많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일부 남성들 사이에선 ‘아내나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찍어서 보는 경우도 많은데 왜 이렇게 난리냐’는 반응이 많았다. 이는 ‘야동’을 공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남성연대 안에서 하나의 문화처럼 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신아형 기자
#정준영 동영상#일그러진 남성문화#여성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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