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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이재]‘눈부신 베트남’을 만든 개혁과 교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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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이재]‘눈부신 베트남’을 만든 개혁과 교육의 힘

김이재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장·경인교대 교수입력 2019-03-15 03:00수정 2019-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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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장·경인교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본보기’라고 치켜세운 베트남의 경제 발전이 눈부시다. 연평균 6, 7%대 경제성장률을 지속해온 베트남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의 4대 교역국으로 급부상했다.

33년 전 베트남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시장에 무지한 관료들의 하향식 통제로 인플레이션이 700%에 달했고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다.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베트남어로 ‘새롭게 바꾼다’는 뜻)를 채택한 1986년 당시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선 승리했지만 국제적으로는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도이머이 선언 후에도 혼란은 계속됐고 보수파의 반대에 부딪혀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사면초가 상황에서 1991년 취임한 도므어이 서기장은 국가 번영의 발판을 마련한 ‘베트남의 덩샤오핑’이었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주이꽁. 후에 도므어이로 개명한 그는 “과거는 잊고 새롭게 태어나자”며 “필요하면 마누라도, 공산당도 바꿔도 된다”고 과감한 혁신을 주문했다. 혁명 1세대 공산당 지도자의 담대한 결단과 지속적 변화 노력으로 베트남은 다시 태어났다. 그의 재임 기간에 중국(1991년), 한국(1992년)과 국교가 정상화됐다. 특히 1995년 아세안에 가입하고 미국과 수교하며 경제성장의 날개를 달았다. 도이머이의 나비효과는 현재 진행형이다.

도이머이 정책의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는 각 분야에 포진한 ‘호찌민 유학생들’이 꼽힌다. 호찌민 전 국가주석은 전쟁 중에도 5000명이 넘는 젊은 인재들을 소련, 동유럽, 중국 등에 유학 보내 글로벌 인재 양성에 힘썼다. 당시 호찌민 국가주석은 “너희들은 공부하는 것이 전투”라며 베트남 경제 재건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외국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호찌민 유학생들은 귀국 후 도이머이에 앞장섰다. 베트남 최초의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팜녓브엉 빈그룹 총수 역시 러시아 유학생이었다. 하이퐁에 최첨단 스마트폰, 자동차 생산 기지를 구축한 빈그룹은 건설, 유통,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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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먼저 느끼고 변화에 앞장선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험을 보유한 남부 인사들이었다. 이념적 수사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동남아 특유의 실용주의가 경제적 성과로 이어졌다. 사유재산을 인정하기 시작하자 농민들은 너도나도 산지를 커피밭으로 개간했고, 베트남은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 됐다. 남부에서 먼저 꽃핀 도이머이는 하노이, 하이퐁으로 북상했다. 현재 하노이의 관문, 하이퐁 산업단지는 첨단기업들이 몰려들고, 할롱베이에는 5성급 호텔 수준 초호화 유람선이 떠다닌다. 베트남 경제의 화려한 비상은 똑똑 떨어지는 베트남 커피처럼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결과다. 새봄 하노이에서 시작된 변화의 날갯짓이 북한의 개혁 개방으로 이어지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김이재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장·경인교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베트남 경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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