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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소영]마라톤은 팔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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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소영]마라톤은 팔로 뛴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입력 2019-03-15 03:00수정 2019-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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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논쟁의 핵심은 ‘안전성’… 끔찍한 사고 막을 수 있는지가 중요
탈원전 논란 어떻게 결론 나도 원자력은 우리 세대가 안고 갈 현실
마라톤 뛸 때 팔다리 함께 흔들 듯… 긴 호흡으로 정책 준비해야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해 수많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마라톤광이다. 보스턴 마라톤 등 세계적 마라톤 대회를 수십 차례 완주했으며 매일 10km씩 주마다 60km를 뛴다.

몇 년 전 하루키가 달리기를 소재로 에세이집을 냈는데 마라톤을 해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깨달음이 많이 담겨 있다. 그중 하나가 마라톤은 발이 아니라 팔로 뛴다는 것이다. 42km를 뛴다고 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게 된다. 근데 막상 그렇게 오래 뛰고 있으면 정작 생각지 못한 곳이 욱신거린다. 팔을 가만히 두고 다리만 움직여서는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법. 다리만큼 오래 앞뒤로 흔들고 있어야 하는 게 팔이다.

이번 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딱 8년이 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며 세계적으로도 1900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4번째로 큰 지진이었다. 경제적 손실 역시 세계은행 추산 2350억 달러로 역사상 가장 피해가 큰 재난으로 기록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고나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사고와 달리 작업자의 실수와 전혀 상관없는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했다. 그래서 ‘친(親)원자력’ 전문가들은 대대적인 탈(脫)원전 운동을 불러온 앞의 두 사고와 같이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반면 ‘반(反)원자력’ 전문가들은 발전소 설계 당시 예상했던 높이 5m를 훨씬 넘는 높이 15m짜리 해일이 닥친 데 주목한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원전 설계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것, 즉 기술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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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새 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을 비롯해 최근 미세먼지 문제 대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원전 확대 논란 등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원전 논쟁의 핵심은 무엇보다 안전성이다. 신고리 공론화에서 시민참여단의 최종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안전성으로 7점 만점에 6.7점이었다. 이는 원전 건설 재개 측이나 건설 중단 측 모두 각각 6.6점, 6.8점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주장할 때 쉽게 예를 드는 것이 원전 사고 가능성이 기차나 자동차 사고 확률보다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고든, 사고가 무서운 것은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한번 일어나면 끔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전 사고 확률이 천문학적으로 낮다는 것만으로 시민들의 원자력 안전성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기는 어렵다.

사고 빈도보다 사고의 ‘끔찍성’이 위험 인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체르노빌 사고 직후 ‘사이언스’지에 실린 심리학자 폴 슬로빅의 논문에 계량적 연구 결과로 잘 밝혀져 있다. 대중의 위험 인식에 대한 이 기념비적 논문은 이후 다양한 기술 위험에 대한 수많은 계량심리학적 연구로 이어졌는데, 위험 인식에 미치는 또 다른 중대 요인은 ‘위험의 통제 가능성’이다.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가 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도 운전을 하는 것은 스스로 자동차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원자력이나 유전자 조작 기술은 보통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다. 기술을 잘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거대 복합기술의 운용은 개인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탈원전으로 간다 해도, 아니 탈원전을 제대로 하려 해도 원자력이라는 기술 시스템은 싫든 좋든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가 껴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장 오늘 탈원전을 선언하고 가동 중인 원전을 모두 중단한다 해도 궁극적인 원전 해체에 걸리는 시간을 상상해 보라. 현재 기술 개발이나 정책 입안을 하는 사람들의 라이프타임을 훨씬 넘는 시간이다. 무지막지하게 오래 달려가야 하는 마라톤이다. 하루키처럼 이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발(기술)뿐 아니라 팔(정책, 거버넌스)도 똑같이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 원전 문제가 어려운 것은 기술의 문제여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의 시간 프레임을 넘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의 시간을 두고 정책을 사고하는 집단적 역량과 경험을 쌓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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